Joker
정신나간 세상에 쏘아 올리는 광기의 웃음
★★★★★
힘겨운 세상을 버티는 원동력이라 한다면 아무래도 즐길 거리다. 좀 어려운 말로는 유희(遊戲), 쉽게 말하자면 웃음이라 할 수 있다. 웃으면 복이 온다. 웃으니까 행복하다. 긍정적인 의미로서 웃어보자. ……그러나 세상이 양분화 되어 있듯, 웃음 역시 양분화 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두를 즐겁게 하는 웃음이 아닌 그저 조롱과 멸시,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비하해서 얻어내는 웃음. 다수의 즐거움을 위해 소수를 밟아 만드는 비웃음. 특정 계층을 위한 웃음의 뒤에 남은 건 이거 밖에 없다. 절망의 순간에 남겨진 공허와 슬픔, 그리고 산산이 부서진 내면이 섞여 만들어내는 광기에 찬 뒤틀린 웃음.
제작발표 당시부터 여러모로 관심을 끌고 끝내 영화제 수상에 외적 논란까지 일으키고 있는 조커. 배트맨하면 같이 따라오는 DC 최고의 빌런 캐릭터이자 광기의 산물 그 자체. 그의 기원을 다룬 내용이라지만 만화적 설정을 최대한 배제한 현실 그 자체를 다룬다. 단순히 정신 나간 미치광이가 폭주해서 벌이는 난동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듯, 왜 이런 짓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자세히 조명한다. 만화에서 나올 법한 스토리가 아닌 현실의 어두운 그림자를 모아 농축한 딥 다크 그 자체다.
작중의 분위기는 음울함 그 자체다. 경제, 사회면으로 파탄 직전인 고담시. 대낮이나 밤이나 항상 짙은 그림자가 강조되는 칙칙한 색체. 낮은 음역의 현악기 선율로 분위기를 한층 더 무겁게 만드는 배경음. 여기에 아서가 겪게 되는 시궁창 같은 일들까지. 인생의 바닥, 그 어떤 한줄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나락의 끝. 사람이 내몰릴 수 있는 극한의 절망. 그게 바로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하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작중 스토리는 개인의 삶을 사지의 끝으로 몰아간다. 아주 조금의 희망도 갈기갈기 찢어버릴 상황만 연속이고. 의지할만한 존재들은 가혹하게 배신감을 주고. 심지어는 존재하지 않는 상황을 망상함으로서 자신을 달래고 만다. 그만큼 조커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고, 버티는데 한계점을 느꼈다고 본다. 관객 입장에서도 이 망상과 현실의 경계가 살짝 애매모호하다보니 혼란의 혼란이 연속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는 조커라는 캐릭터의 기원이 정체불명인 만큼 확실성을 주지 않으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다.
시시때때로 웃어대는 조커의 모습은 고통스러운 웃음이란 게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그저 통제되지 않는데서 오는 일그러짐이 전부가 아니다. 기쁨으로서의 웃음이 없어지고 난 자리를 차지해서 표출되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다. 그저 남들 따라 웃을 뿐이고 실제로는 빈껍데기에 불과한 공허함. 끝이 보이지 않는 슬픔,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으로 인한 허탈감, 자신이 믿고 있던 이들에게 배신당함으로서 오는 깊은 절망감, 잃을 것이 없다는 듯이 내지르는 광기. 단순한 병적인 행동이자 공허함이 전부였던 걸 넘어, 하나의 표현 수단으로서 개개의 웃음에 그 상황의 감정이 담겨 있다고 느껴진다. 조커하면 떠오르는 광대 이미지에도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묘사이기도 하고.
개봉 이전부터 여기저기 우려하던 모방의 문제는 이 부분을 보고 말하는 듯하다. 조커의 범죄행위와 그로 인해 고담시 전체에 영향을 준 모습.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영화 속의 조커는 단순한 미치광이가 아니다. 무차별 살육을 저지르는 만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현실에 있을 법한 우발적 범죄자에 가깝다. 모든 것을 내던진 끝에 폭발한 광기를 가진. 범죄 행동 자체를 옹호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조커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는 건 공감 받을 만 하다고 생각하는 바다. 솔직히 모방의 문제를 제기하기 보다는 이런 결과가 나온 게 된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과연 분별력 없이 사건이 벌어지고 다수가 무작정 동조했을까? 아니면 기본상식과 분별력이 있음에도 최후의 선택이 이거 밖에 없어서 저지른 것일까? 몰상식, 몰상식하기 전에 그들이 처한 환경이 얼마나 심각하고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을 대우를 해주었는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믿고 있던 모든 것들에게 철저히 외면 받은 끝에 폭발한 악(惡)이었는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은 폭력의 발생 과정과 한 개인이 겪는 극한의 불행뿐만이 아니다. 의지할 대상, 또는 우상이라는 존재가 주는 배신감이다. 팬심이나 존경심으로 상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에 영향을 줌으로서 존경과 믿음을 주는 경우라 그 만큼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작중에서도 사실상 조커가 마지막으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자 광기를 억누르고 있던 제동장치나 다름없었기에 더욱 깊이 각인이 된다. 어떻게 보기에는 상상하던 이미지와 다른 부분 때문에 나오는 잘못된 폭발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상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감과 위선은 구분해야 한다. 애초에 믿을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부터 의심할 필요가 있긴 하다. 만인에게 보이는 모습이 사실은 알맹이 없는 가식이었다든지. 대외적 이미지만을 위한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뿐이었는지. 다른 건 몰라도 믿음이 파괴되는 것만큼 심리적 동요를 주는 건 없을 것이다. 단 하나 남은 한 줄기 빛이 알고 보니 나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만에 불과했다니. 이걸 알고도 참거나 현실을 부정하며 버티는 것이 가능할까. 폭발하기 직전인 도화선에 불이 붙은 이상 어느 한 곳에서 폭발이 시작될 것이고. 한 번 시작된 폭발은 곧 연쇄 폭발로 이어져 도시 전체를 불타오르게 만들어도 이상하지 않다.
현실 문제를 아주 깊숙한 밑바닥까지 훑으면서도 종종 눈에 띄는 구석이 있다. 바로 코미디적인 요소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진짜 웃기고 재미있으라는 코미디가 아니라 진지함을 담은 코미디. 아주 쓰디쓴 맛을 가진 블랙 코미디다.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종종 나오는 개그 아닌 개그처럼 보이는 상황. 도덕적 리미터가 파괴되면서 방출되는 자유로운 몸짓.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혼란 속에서 피어나는 조소. 물론 이 영화 속에서 웃기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고 오히려 우울감이 도지고도 남을 지경이다. 그럼에도 코미디라고 하는 이유는 이렇다. 정신 나간 세상을 무대로 조커라는 광대가 보여주는 부조리한 희비극이나 다름없게 보여서 그렇다. 사회에 대한 희화와 비판을 넘어 광란의 쇼를 보여준 탓에 불건전하다는 의견을 받고 있지만 이건 알아두자. 광대는 관객들을 향해 훈계를 하거나 무언가를 조장하지 않았다. 다소 과격했어도 그저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부조리한 상황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잘못된 오독을 했다면 그 당사자가 비판받아야 마땅하지, 광대와 연극의 탓으로 몰아가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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