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t
싸구려틱한 겉모습과 차원이 다른 수작 재난물
★★★★☆
웃긴 것과 진지한 것이 같이 나올 때의 완급 조절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바다. 조금만 한쪽이 눈에 띄게 치고 나오면 금방 모양새가 이상해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진지한 상황에서 느닷없이 개그를 치면 분위기를 확 깨버리고. 반대로 웃긴데 진지한 상황이면 조합이 이상하게 나와서 그야말로 완성도 떨어지는 B급 영화나 다름없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걸 중점으로 두거나, 궁금증이 생기기 전까지는 딱히 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 내 예상을 완벽히 벗어난 수작이 나왔다.
이 영화의 첫 인상은 전형적인 한국식 신파극에 B급 코미디를 섞은 것이라고 짐작했다. 포스터나 예고편에서도 그런 예상이 들게 보였고. 그런데 코미디를 표방한 것치고는 초반 약간을 제외하면 유독가스 테러가 일어난 상황을 매우 진지하게 다루어서 여러모로 당황했다. 홍보를 조금 색다르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 자신이 처음부터 너무 편견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사족 없이 빠르게 사건이 벌어지고 이런 영화에서 흔히 나올 법한 전개와 캐릭터가 전혀 없어 시원시원하다. 다소 긴장감을 유지할 필요가 있는 몇몇 부분을 빼면 속도감이 엄청날 정도다. 인물들 간의 드라마 요소는 분위기를 심하게 고조시키지 않고 핵심만. 코미디 요소 역시 분위기를 깨지 않는 선에서 소소하게. 특히 코미디 부분에서 호평하는 점은 이거다. 그 동안 코미디 요소를 넣는답시고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개그를 치거나 되도 않는 바보짓을 넣는 경우를 진짜 많이 봤다. 이런 것도 작중 상황이나 장르에 맞춰서 넣어야 웃기기라도 하지, 아무렇게나 막 넣으면 오히려 짜증나게만 한다. 개그가 아닌 민폐, 눈치 없는 고구마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영화 속의 코미디 요소는 웃기더라도 그 상황에 걸맞게 자연스럽다. 다소 웃기게 묘사됐어도 그 상황에서 했을 법한 최선의 행동이거나, 다소 착각할 법하게 보이는 부분이라 뜬금없이 나오는 불필요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중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코미디를 나타내는 가장 좋은 예라 해도 될 정도다.
주로 건물 외벽의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거나 건물과 건물 사이를 넘나드는 장면이 많아 스릴감이 꽤 있다. 그것도 다른 영화에서 나올 법한 맨몸으로 벽을 타고 뛰어넘는다던지, 말도 안 돼는 도구 사용법 같은 건 일절 없이. 암벽타기 경력이 있는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의 모습을 그려내기 때문에 다소 과장이 있더라도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그 밖에 실제상황에서도 활용 가능할 법한 대응방법이나 도구 활용이 많아 한 번 더 놀라게 만든다. 이런 부분까지 신경 써서 만든 경우가 있었다니. 코미디 요소로 다루긴 했지만 작중 인물들의 감정 상태를 현실적으로 나타낸 것 역시 매우 좋게 봤다. 솔직히 아무리 영화라지만 재난상황에서 보통 사람이 침착하고 담담하게 있는 것부터가 작위적이긴 하다. 영웅스럽게 묘사함으로서 화려한 액션과 감동을 준다고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재난 묘사나 상황 설명에 공백이 생기고 감동적인 드라마 연출한다고 스토리만 질질 늘어진 경우를 많이 봤다. 존 윅이 나올 때도 그랬지 않은가. 그런 거 할 시간에 몇 명이나 더 죽인다고. 이 영화도 영웅묘사와 감동 드라마 할 시간에 재난 속에서의 생존 모습과 현장감, 인재라는 특성상 필요한 개연성 부분에 집중했다고 보면 되겠다.
호평할 부분이 많지만 아무래도 단점 역시 존재한다. 현실적인 리얼함을 살리는 건 좋았지만 영화적으로는 다소 불필요해 보이거나 과도하게 보일 법하기도 했다.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오버스러운 면이 많아 오글거리게 보일만도 하다. 현장감을 잘 살렸다지만 코미디를 표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재난상황 묘사가 다소 축소되어 보이는 경향도 적지 않다. 원맨쇼처럼 보일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재난물 치고는 너무 텅텅 빈 것처럼 보인 건 사실이다. 신파요소 역시 스토리 중심적으로 남발하지 않았을 뿐, 어느 정도 존재하는 편이라 완전히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흔히 영화를 좀 보는 분들이 말하는 명작 수준이라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냥 가볍게 볼 수 있되, 짜증이 날 정도로 자주 우려먹고 남발하는 요소 없이 꽤 참신하게 만든 오락영화 정도?
참 오랜만에 보는 특이한 형태라 어안이 벙벙하지만 이런 영화가 나와서 어디냐는 생각이 많이 든다. 명작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재미와 신선함을 느낄 수 있어서 이런 독특한 영화를 매번 기다리게 된다. 더 크게 바랄 것도 없이 이런 참신함이 계속 이어지는 국산 영화가 됐으면 한다.
조커(2019) (0) | 2019.10.05 |
---|---|
그것: 두 번째 이야기(2019) (0) | 2019.09.29 |
사탄의 인형(2019) (0) | 2019.08.07 |
미드소마(2019) (0) | 2019.07.19 |
기생충(2019) (0) | 2019.06.22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