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ass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는 천재 악당의 큰 그림
★★★★
앞에 나서서 직접 싸우는 것도 멋지지만, 가만히 앉아서 머리로 싸우는 것도 대단하다. 무엇이 어떻게 돌아갈지 모르는 세상을 꿰뚫고 설계를 한다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단, 하나의 오차로도 실패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 역시 쉽게 예측이 불가능하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눈앞에서 직접 보이는 게 없어서 기다리는 것도 고역이다. 혹시나 실패하지 않을지, 과연 이게 완벽하게 설계된 것일까. 이런 내면의 불안과 참을성 없는 외부의 평가 역시 감안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렇듯 셀 수 없이 많은 변수를 넘어 자기 위주로 돌아가게 판을 짜서 실현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지략가 제갈량이 왜 아직까지도 칭송 받겠는가.
언브레이커블부터 오랜 시간 걸려 진행된 샤말란 감독의 히어로 시리즈도 판이 커질 예정인 듯하다. 이제 메인 캐릭터들이 한 자리에 모였고 진가를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이번 영화 역시 장점이자 단점인 독특한 색체는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나타난다. 그렇기에 간단하고 객관적인 평가는 이미 물 건너갔다고 봐야겠다.
본격적으로 충돌이 예고된 데이비드 던과 패거리의 액션이 제일 주목받는 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메인 스토리로 차지하는 부분은 아니다. 감독이 미리 말했듯, 흔히 아는 슈퍼히어로 영화가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판타지 분위기의 액션보다는 현실기반으로 한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
대체로 회의적인 시선에서 주요 3인방을 비추는 장면이 많아 꽤 답답하다. 예외란 절대 없고 반드시 이렇다는 가정을 두고 가르치려는 모습이 대부분이라 여러모로 불쾌한 감이 많다. 아무리 외적으로 강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라도 정신적인 부분을 건들면 무력화 되는 것으로 보이긴 하다. 만화에서도 이런 전개를 종종 볼 수 있다. 특수 무기나 환각 등으로 정신적 공격을 하는 빌런이 나올 때 그렇다. 한편으로는 초반부터 출처를 알 수 없는 것들이 갑자기 난입하기 때문에 이들의 정체에 의문을 가지며 볼 수는 있다.
제목답게 엘리야 프라이스, 즉 미스터 글래스의 진가가 들어난다. 이전 영화에서는 글래스가 벌인 악행의 결과만 봤을 뿐이지, 세세한 과정을 보지는 못했다. 어떻게 보면 몸이 약하다는 특징을 이용해 허를 찌른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다. 때문에 약간 과대평가되었다는 주장이 나올 법도 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 나타난 글래스의 천재성은 상상 그 이상이다. 설계는 물론이고, 현실적인 계산으로 몇 수를 넘어보며, 심리적인 술책도 상당하다. 단순히 머리 좋은 걸 넘어 지능형 악당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할 정도로 반전의 반전을 보여준다.
전편의 주역들도 여러모로 존재감을 보여준다. 글래스가 흑막 및 설계자 역할이라면 메인 빌런의 이미지는 단연코 패거리다. 전편에서 맛보기 정도 밖에 못 봤던 비스트의 날뛰는 모습이 제대로 나온다. 액션 장면이 짧긴 해도 그 안에서 역대급 사상자를 냈으니 상당한 위력이다. 또한 그 역시 하나의 인격이기에 짐승 같은 모습 속에 숨겨진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요소 덕에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가 생각보다 다르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에 더 업그레이드된 제임스 매커보이의 24가지 인격 연기는 몇 번을 봐도 놀라운 부분이다. 데이비드 던 역시 현실 히어로라는 위치에서 패거리와 맞설 정도의 강력함과 동시에 여러모로 고뇌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만, 이전 영화에 비해 던은 약간 위축된 감이 적지 않아 있다. 세월이 꽤 흘렀고 히어로라는 위치의 무게 때문에 몸을 사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거침없이 날뛰는 패거리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로 활용하는 글래스를 보자면 던은 좀 아쉽게 나오지 않았나 싶다.
종합적으로 보면 액션 자체는 너무 초월적이지 않는 선에서 박진감 넘치게 잘 나오긴 했다. 평범한 선에서 멋진 연출을 보여준다는 건 쉽게 상상이 안 되는데, 그걸 실현 시킨 것부터가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전편에서 나온 모습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밋밋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히어로라는 주제를 생각하면 이것저것 바뀌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매우 현실적인 슈퍼히어로가 무엇인지 다루다보니 기존의 슈퍼히어로 세계관이 너무 편리하게 구성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물론 마블 세계관에서 벌어진 시빌워나, 엑스맨 같은 사례를 보면 현실적 고찰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샤말란 감독의 세계관은 지나치게 현실을 추구한다. 오버 테크놀로지나 판타지 요소 같은 건 전혀 없다. 초능력도 다른 히어로물에 비하면 자세히 보지 않는 이상 눈치 채기 힘들 정도로 평범한 축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여기고, 그 가정을 넘어서거나 다른 점만 있어도 비정상으로 치부되는 현실 그 자체다. 이런 현실에 히어로든 빌런이든 초능력을 가진 자가 나타난다면 무조건 호의적일까? 아무도 모르게 소코비아 협정 같은 걸 순식간에 만들고도 남지 않을까?
각각 뚜렷한 약점을 만들어 어느 정도의 한계점을 둔 것도 꽤 괜찮은 설정이었다. 흔히 밸런스 붕괴라는 게 왜 발생하는 가. 강함의 척도를 힘으로만 보여주다 보면 제한선 없이 계속 올라가고 결국에는 각 캐릭터 간의 균형을 깨뜨리고 마는 것이다. 슈퍼맨의 전례도 있다. 마블 영화감독도 슈퍼맨만큼 다루기 까다로운 캐릭터가 없다고 말하지 않은가. 그 이유는 무지막지하게 강한데 약점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크립토나이트라는 약점이 있지만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무 때나 꺼내기도 힘들다. 그에 비하면 샤말란 감독의 영화 속 히어로나 빌런은 능력에 대비해 존재하는 약점이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약점을 공략하기 매우 쉽거나, 주변 어디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런 점만 봐도 감독이 생각하는 히어로 세계관에서 무엇이 더 나올지 상당한 기대가 되는 바이다.
결말에 대해 말하자면 꽤 호불호가 갈린다. 큰 그림이 중요했고, 좀 뜬금없긴 해도 세계관 확장 요소까지는 좋았다. 다만, 꼭 이렇게 해야 됐나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주요 인물들을 이제 막 한자리에 모아놓고 말이다. 이게 끝이 아닌 시작이라니까 이후를 지켜봐야 하긴 하다. 3부작의 마지막이라는 특성상 깔끔한 마무리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고. 그럼에도 뭔가 아쉬운 감이 계속 남는다. 마치 만화책 결말을 보고도 후속이 더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같다. 새로운 시리즈든, 외전이든 간에 이 아쉬움을 다음 차기작에서 채워주었으면 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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