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Quiet Place
그 어떤 소리도 허용불가, 진짜 소리내면 죽는다
★★★★★
공포영화가 나올 때마다 소리내면 죽는다는 광고 카피는 정말 많이 봤다. 아니, 거의 필수요소나 다름없게 보일 정도다. 그래서 실제로 보면 어떠냐? 거의 절반은 비명지르며 죽는 장면으로 설명되는 게 전부다. 그래서 소리내면 죽는다가 아니고, 죽을 때 소리 지른다로 보일 정도다. 더 웃기는 건 소리내면 죽는다고 해놓고 정작 공포에 질려 소리지르는 상황만 계속보여주는데, 이러면 긴장감이고 뭐고 그냥 이제 곧 죽겠구나 아니면 뭐 나오겠구나 하고 예고하는 거나 다름없다. 분위기 조성해서 놀라게 하는 게 나쁘다는 건 아니고 단지 소리내면 죽는다는 것에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뭐, 숨 죽이고 있다가 안심할 때 쯤에 덮치는 구도 정도면 그나마 잘 살리려고 노력한 정도로는 볼 수 있다.
가장 이에 충실하다고 생각하던 게 <맨 인 더 다크>였다. 말 그대로 소리를 내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 영화가 소리내면 죽는다에 가장 걸맞을 것 같다. <맨 인 더 다크>에서는 적어도 약간의 소리는 허용됐지만, 이 영화는 그런 거 전혀 없다. 진짜 말 그대로 소리내면 쥐도새도 모르게 죽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물론이고 분위기를 조성할 때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도 거의 중반부 되서 나올 정도다. 대부분 들리는 건 자연적인 바람소리, 물소리, 야생동물 소리 정도다. 이정도면 무서운 장면이 나올 때의 정적이 아니라 온 세상이 숨죽이는 깊은 침묵이다.
사실 침묵이라는 요소는 공포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무언가 나타날 징조라고 보면 될 것이다. 일상과 비일상을 나누는 경계라고도 본다. 밝은 분위기가 갑자기 반전되는 순간이 대부분 침묵으로 시작되고, 침묵이 끝나는 순간 무서운 장면이 이어지는 구성을 볼 수 있으니까. 또 장소마다 침묵이 만드는 느낌도 다르다. 한정된 공간이라면 폐쇄적이고 답답하게 만들고, 반대로 대도시 같은 넓은 장소라면 혼자 다른 세상에 떨어진 느낌, 흔히 종말이 일어난 세상에서 혼자 생존한 분위기다. 그렇기에 침묵이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이 영화는 어떻겠는가.
무언가 나타날 징조가 매 순간마다 있다.
여기에 실내건 야외건 동등한 침묵.
위에 나타난 모든 요소가 전부 합쳐진 상태라 봐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작중에서 무슨 소리가 갑자기 들리게 되면 주연인물들이 느끼는 공포가 어떤 것인지 금방 알 수 있게 된다.
숨막히는 공포 설정에 비해 메인 스토리가 좀 평이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나름 잘한 선택으로 본다. 기발한 설정을 해놓고 그 세계관을 잘 써먹지 못하는 사례가 은근 많다. 가령 세계관을 만들어 놓고 주 스토리가 그걸 설명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거나, 쓸 때 없이 스토리를 부풀려 놓고 수습하지 못하고, 또는 너무 설명이 없이 떡밥 뿌리기가 전부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게 될 바에는 차라리 이 영화처럼 적당히 공개한 상태로 진행되는 가족 단위의 생존 스토리가 더 안전한다. 게다가 침묵하는 세상이라는 배경에도 나름 어울린다.
가족끼리도 말로 다 표현 못하는 게 많다. 요즘 일상에서도 대화가 없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데, 소리를 내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아무리 좋은 가족이라도 서로 오해하는 일이 생기고도 남는다. 침묵이 곧 단절로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침묵이라서 더 애틋하기도 하다. 표현하지 못하던 많은 게 단 하나의 소리에 함축된 걸 느낄 수 있을 정도니까. 이런 내용을 평범한 배경에서 했다면 어땠을까? 뻔하고 잔소리 같이 다가왔을지도 모르겠다.
상영시간이 짧은 것도 꽤 장점으로 작용한다. 어둠 속에서도 눈이 익숙해지면 주변이 잘보이게 되는 것처럼 침묵도 길게 끌고 가기는 어려운 요소다. 아무리 잘 이끌어간다 해도 특유의 패턴이나 분위기가 익숙해지면 루즈해지기 쉽다. 쓸때 없이 늘리는 것보다는 짧고 굵게 하는 게 더 큰 영향력을 주기에 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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