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one
배우의 명연기로도 심한 공백이 느껴지는 부실한 영화
★★
영화의 완성도를 논할 때 배우의 연기력도 중요하다. 극중 배역을 얼마나 잘 묘사하고 소화하는 가에 따라 극중 몰입감이 달라지는 걸 여러 번 경험하면서 확실하게 느꼈다. 메소드나 입체적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걸. 하지만 배우의 연기력만 좋다고 영화의 완성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연출이 받쳐 줘야 하고 그에 맞는 감독의 역량이 뒤따라야 한다. 연출과 감독의 역량이 못 따라준다면 그냥 배우만 낭비한 것이나 다름없다.
톰 하디의 치매 걸린 알 카포네라는 배역 때문에 눈길을 끈 것도 있지만 감독이 여러모로 예사의 인물이 아니라서 이 영화가 주목 받았을 것이다. 마블에 인수되기 전의 <판타스틱 4> 리부트를 말아 먹은 것도 모자라 촬영장에서 여러 트러블을 일으킨 걸로 악명 높기 때문이다. 그런 감독의 재기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톰 하디의 알 카포네 비주얼만 봐도 장난 아니겠다는 인상이 강했다. 감독은 둘째 치더라도 톰 하디의 연기가 어떨지 궁금해 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영화를 보니 예상은 크게 틀리지 않긴 했다. 진짜 명연기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기대했던 톰 하디의 연기는 이견 없이 최고다. 시가를 맛깔나게 피우는 모습부터 노쇠했음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갱스터 이미지가 상당한데 자세히 보면 볼수록 그 디테일이 엄청나다. 걸걸하다 못해 심하게 갈라져 쉰 목소리로 자연스럽게 번갈아 쓰는 영어와 이탈리아어. 정신적으로 이상이 보일 때마다 나타나는 먼 산을 바라보듯이 방황하는 시선. 왕년의 마피아 보스다운 거친 성깔과 과격함이 들어나는 행동. 그러나 세월 앞에서는 별 수 없다는 듯이 가면 갈수록 병약하게 망가져 가는 몰골. 외견부터 내면까지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 결과물이다.
연출 면에서도 치매 걸린 사람의 현실과 망상이 뒤섞인 시점을 기괴하게 잘 나타냈다. 치매 걸린 사람은 옛날 기억을 바탕으로 거꾸로 간다고 들었는데 알 카포네가 그 당사자인 만큼 심상치 않은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과거의 거칠고 잔인한 마피아 세계를 보여주다 못해 마치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라 회상이 아니라 방황에 가깝다. 딱 봐도 망상이라는 게 구분지어지는 구간이 보이면 다행이다. 멀쩡한 현실로 보였는데 어느 순간 망상으로 보이게 만드는 장면이 갈수록 늘어나서 무엇이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서 말했듯이 톰 하디가 너무 강렬한 나머지 다른 외적인 요소들은 전혀 의미 없어 보인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배우는 명연기를 보여주는데 무대와 각본이 부실해도 너무 부실하다. 작중에서 제시되는 요소들은 이렇다. 노년의 알 카포네가 치매로 보게 되는 광경. 이런 알 카포네를 보살피는 가족과 지인들. 여전히 풀리지 않고 의문으로 남아 있는 숨겨둔 자금 문제. 흥미롭게 보이는 요소가 상당하다. 그런데 이 요소들 중에서 깊이 있게 다룬 것은 치매 걸린 알 카포네 밖에 없다. 나머지 요소들은 현실과 망상이 뒤섞인 연출과 시원치 않은 스토리 전개 속에서 뒤죽박죽이다. 나름 조연급인 알 카포네의 가족들은 딱히 특별한 역할이랄 것이 없어 고급 엑스트라라고 해도 될 정도다. 톰 하디와는 다른 의미로 배우 낭비라고 할 수 있다. 숨겨진 자금문제 역시 겉핥기 수준이다. 작중 스토리 내에서 확실한 설명이 없고 비중 역시 중간 중간 아무렇게나 끼어드는 모양새라 감독이 이걸 진지하게 다룰 생각이 있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이런 상태에서 전체적으로 알 카포네의 온전치 못한 정신상태 묘사에 모든 걸 쏟아 부으니 연출이 좋아도 오히려 단점으로 크게 부각된다. 무엇하나 확실한 것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현실과 환상을 꼬아놓으니 도리어 짜증만 날 뿐이다.
전기 영화라는 점에서도 상당히 애매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물의 전기라는 점에서 그 인물에 몰입하게 해야 된다는 건 알겠다. 톰 하디의 명연기도 그런 의도에서 나온 결과물이고. 다만 알 카포네 말고는 주변 인물이나 외적인 상황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기에 전체적으로 보면 따로 노는 모양새다. 한 사람의 일대기는 그 사람만 완벽하게 묘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변 인물과 상황이 심리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는지 알아야 더욱 인간적인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만 몰입되고 나머지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구성인 이 영화는 불균형 그 자체다. 전기라기보다는 1인극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위플래쉬(2014) (0) | 2020.11.09 |
---|---|
그린랜드(2020) (0) | 2020.10.19 |
테넷(2020) (0) | 2020.08.29 |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2020) (0) | 2020.08.16 |
그레텔과 헨젤(2020) (2) | 2020.07.27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