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insula
가족 신파 액션극장, 매드 반도 오브 더 데드 맥스
★★★
세상으로부터 버려진 비참함은 말로 다할 수 없다. 끝없는 희망고문, 아니면 이성의 끈을 놓고 짐승처럼 살아가기. 무엇을 하든 밑바닥인 현실에서 할 수 있는 건 이 둘 사이를 넘나들며 버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던져진 기회가 있으면 놓칠 수가 없다. 어둠 속에서 절여진 비참함이란 금이 가기 직전인 상태로 버티며 바라는 절박함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극한까지 몰아가는 거 같다면 살짝 밝게 해도 좋긴 하다. 그런데 이 절박함과 어울리지 않는 가벼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전반적으로 <랜드 오브 데드>에 <매드 맥스>를 섞고 가족 신파극을 왕창 뿌려 넣은 느낌이다. 예고편에도 나온 좀비 투기장은 랜드 오브 데드에 나온 것과 거의 비슷할 정도다. 작중 대부분의 액션 장면으로 나오는 카체이싱과 미친 생존자들의 차량은 누가 봐도 매드 맥스다. 폐허가 된 서울시내 말고는 딱히 개성적으로 볼 것이 거의 없기에 <매드 반도 오브 더 데드 맥스>라는 명칭이 딱이다.
부산행에서도 지적된 신파극 문제는 더 심해졌다. 작중 스토리 절반 가까이가 가족 신파극이 차지하니 말 다했다.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라이트 한 배경음을 깔고 가벼운 분위기를 연출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웬만해서는 배경음악 가지고 절대 뭐라 하지 않는데 이렇게까지 어울리지 않는 건 처음이다. 마치 <에일리언> 영화에서 로맨틱한 분위기의 배경음이 나오는 꼴이다. 틈만 나면 누가 죽고 눈물 쏟고. 여기에 이 장면을 강조한답시고 슬로우 모션을 때려 박기까지. 미친 생존자 집단을 포함해 등장인물 대부분은 신파극 연출하려는 도구로 나온 거나 다름없다. 어디서 많이 본 것들로 구성해 놓았더라도 좀 진지하고 스릴 있으면 그나마 재미있을까 말까 했다. 그런데 분위기도 안 맞는 가족 드라마나 주구장창 깔아 놓고 있으니 한숨과 지루함만 늘어난다.
반도에 남겨진 미친 생존자들인 631부대의 모습은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배경이면 흔히 나올 요소로 나름 긴장감 있는 상황을 만들지만 상당히 평면적이다. 뭔가 더 거창한 걸 바란 건 아니지만 <랜드 오브 데드>의 피들러스 그린을 열악한 환경에서 흉내 낸 정도 밖에 안 돼서 그렇다. 여기에 황 중사와 조연 1명을 빼면 빼면 딱히 카리스마 있어 보이거나 다른 생각을 보이는 인물이 전무해서 단순한 악탈자, 미친놈 이미지를 더욱 각인시킨다. 그나마 서 대위라는 인물만 단순한 미친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긴 했다. 진정한 희망고문 아래서 비참하게 미쳐버린 생존자 그 자체라 631부대의 밋밋함을 약간은 지워준다. 다만 뭔가 더 입체적인 캐릭터를 보여줄 것과 달리 사실상 신파극을 위한 역할로 쓰여서 상당히 아쉬웠다. 뭐, 그래도 서 대위라는 인물의 비참함과 희망고문을 끝까지 살리긴 해서 그럭저럭 괜찮다 할 수는 있다. 단지 뭔가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모습이라 안타깝다.
신파극과 생존자 집단 간의 사투를 정신없게 다루다보니 명색이 좀비영화 임에도 좀비는 자연스레 뒷전으로 보일 수밖에 없지만 이건 딱히 상관없다고 본다. 좀비 영화라고 좀비로 꽉 차야 된다는 법은 없다. 부산행처럼 극 초반의 상황이라면 모를까 작중 시간대는 4년이 지난 상태다. 생존자와 생존자 간의 사투 속에서 양쪽 모두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변수 역할 정도면 적절하다. 총기 사용이 늘어나고 카체이싱이 많이 나오는 이상 쓸려나가는 역할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나름대로 각종 변수를 일으키는 역할도 꽤 나쁘지 않다. 인공조명, 조명탄, 차량 조명 같이 좀비를 유인하는 요소들이 생각보다 화려한 건 덤이고. 차량이 무조건 만능이 아니라는 것도 보여준다.
사실 좀비의 분량 문제 보다는 작중 좀비 설정에 대한 일관성 문제가 더 심하다고 생각한다. 대놓고 극적인 배경, 극한 상황을 만들려고 한 듯이 필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전작에서도 지적된 감염 속도 문제는 크게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 특히 지적되는 부분은 소리에 민감하다고 하면서 필요에 따라 듣는 범위가 달리지는 점이다. 초중반까지는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나타내놓았다. 그런데 후반부 들어서 신파극 연출한다고 심각한 설정오류를 내고 만 것이다. 두 가지 큰 소리가 있고 하나가 유독 더 크게 들리는데 좀비들은 작은 큰소리를 쫓아간다? 감염속도야 논란이 있어도 실제 바이러스 전파에도 편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적당히 넘어간다 해도 이건 빼도 박도 못한다.
하루 만에 나라가 붕괴했다는 배경적 설정 역시 신경 쓰이겠지만 이건 <새벽의 저주>에서도 나온 설정이라 딱히 문제 될 건 없다. 진짜 문제 되는 건 <부산행>과의 연결점이다. 아무리 전작과 이어지지 않는 속편이라 해도 세계관 설정은 일정해야 마땅한데 아무런 설명 없이 상황만 극한으로 몰아가기에 급급한 걸로 밖에 안 보인다. 해외 전파가 전혀 없었다는 것도 살짝 무리수긴 하다. 적어도 입국 직전에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해서 해외에도 좀비가 발생했으나 초기 진압에 성공했다는 정도의 설정은 있어야 됐지 않나 싶다. 그럼 한국 한정 고립의 근거를 더 탄탄하게 했을지도 모르겠고.
사실상 절박함을 신파극으로 가득 채워 나타낸 결과물이라고 봐야겠다. 아무리 백번양보해서 절박한 상황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나올 수도 있다 해도 이건 도를 넘어섰다. 아무리 멋진 장면과 꽤 괜찮은 설정이 있더라도 결국은 흔한 한국식 신파극 영화 아류작이나 마찬가지다. 짜고 매운 것을 과하게 먹는 한국식 입맛이 건강에 나쁘듯이 과한 한국식 신파 역시 좋지 않다고 본다. 해외에는 신선하게 먹힐지 몰라도 이미 국내에서는 당연시 넣는 자극적인 조미료가 된지 오래다, 나중에 가서 단점으로 지적받기 전에 슬슬 줄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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