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시공사
일본 만화
★★★★☆
세상에는 다양한 악의가 존재한다. 사악한 계략, 이유 없는 증오, 괜한 심술,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판단하고 벌이는 비뚤어진 행동, 등등. 그냥 보기에는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 주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도 있다. 예를 들자면 약간 어리광이 섞인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말이다. 살의는 없었다지만 다소 도가 지나친 장난이었다던가. 짜증날 정도로 강한 중2병에 가까운 허세. 여기에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다수를 방심시킬 수 있다는 교활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린 생각에서 나오는 발상에는 허술함이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게 자신의 생각대로 된다고 자신만만하지만 전혀 예상하지 않은 변수 앞에서는 속수무책. 때로는 대책 없이 저지른 일에 되려 본인이 당하기도 하고. 결국 혼자서 수습하지 못해 망신당하고 엄마, 아빠를 찾고 만다. 굉장히 철없고 약간 섬뜩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악동, 어딘지 모르게 미워할 수 없는 건 왜 일까?
소이치라는 괴짜 소년이 메인이 되는 이 시리즈는 기괴한 요소가 양념으로 들어갔을 뿐이지 사실상 개그만화에 가깝다. 그것도 블랙 코미디. 물론 이 양념이라는 것도 기존에 나오던 단편에 비하면 약하다는 것이지 종종 징그러운 묘사가 나와서 결코 가볍지 않다. 입에 여러 개의 못을 물고 다니고, 다양한 형태로 저주를 내린다는 소이치의 특징만 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건 마찬가지고. 그럼에도 소이치 시리즈는 지나치게 어두운 분위기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종종 분위기가 진지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긴 해도 마지막에 소이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이것 밖에 없다. 업보청산 또는 자업자득.
공포에 대한 부분은 어느 정도 다루었으니 이제 가장 중요한 개그 부분이다. 공포와 개그가 잘못 섞이면 B급으로 못 치는 저질이 되고는 하는데 소이치 시리즈는 그런 걱정할 필요 없다. 의외로 공포연출 만큼이나 개그센스도 상당하다. 대체로 조금 기묘한 분위기를 나름 진지하게 살리는 것처럼 보이다가 개그로 변주 시키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런 느낌에 익숙해지다 보면 초반의 기묘한 분위기도 웃기게 보이는 상황이 벌어진다. 온갖 주술이 판치는 기묘한 일상물이 어느 중2병 소년의 어설픈 주술쇼가 되는 것이다. 이 개그 분위기에서 소이치를 보면 음침한 인상 속에 숨어 있던 어린 아이의 이미지가 들어난다. 그 나이대의 소년이 할 법한 철없는 행동, 유치한 발상, 이성에 대한 관심, 은근 여린 마음. 이런 탓에 고약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소이치를 미워할 수 없게 된다.
한편으로는 누구나 한 번 쯤은 생각해 봤을 저주 같은 것이 얼마나 부질없고 무의미한 행동인지 나타낸 걸로 보였다. 작중에서 소이치가 저주를 내리는 동기는 하나 같이 쪼잔한 것들이다. 그것도 본인 스스로 문제를 일으켜 놓고 적반하장이거나 무조건 남 탓으로 돌리며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보면 얼마나 비뚤어진 심성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렇기에 소이치가 남에게 내린 저주는 곧 어떤 형태로든 간에 자신에게 되돌아온다고도 볼 수 있다. 즉, 소이치의 저주가 성공한 듯이 보여도 그것이 곧 소이치 본인에게 내려지는 저주의 서막인 것이다. 저주를 내리는 능력이 있지만 결국 저주의 대상이 되는 건 자기 자신. 얼마나 아이러니한 블랙코미디인가.
이 구제 불가능한 저주 소년 소이치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여전히 저주를 내리고 자기 자신이 저주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웃픈 나날의 연속일지도 모르겠다. 나이를 먹으면 마음이 커져 지나간 나날을 돌아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늦게까지 철이 들지 않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자주 보이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간에 확실한 건 소이치 같은 심성을 가지고 행동하면 스스로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게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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