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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 준지 공포박물관 4: 허수아비

도서 BOOK/만화 COMIC BOOK

by USG_사이클론 2019. 3. 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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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준지공포박물관4

 

이토 준지/시공사

일본 만화

★★★★☆


 

붉은 실

 여자 친구에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받은 충격으로 쓰러진 토모오. 며칠 간 쉬면서 안정을 찾고 다시 학교에 나갔다가 손목에 붉은 실이 박혀 있는 걸 알게 되는데...

 운명의 붉은 실이라고 로맨스에서 자주 쓰이는 요소인데, 이것마저 작가에게는 그로테스크한 공포 소재나 다름없었다. 신체 절단 같은 것 없이 그냥 실만 박히는 것이지만, 수술한 뒤에 꿰맨 자국이 심각하게 남으면 보기 힘들 듯이 이 만화 역시 그렇다. 그래도 소재의 본질인 로맨스에 대한 부분도 어느 정도 살리긴 했다. 비정상적으로 뒤틀리고 괴기스럽긴 하지만.

 

 

중고 레코드

 친구의 집에서 듣게 된 출처를 알 수 없는 오래된 레코드. 그 노래 선율에 빠진 나머지 그만 훔치고 마는데...

 만화를 보면서 이게 과연 어떤 소리일까,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을까? 노래를 소재로 만든 기묘한 호러인데도 어딘가 아름답다는 인상이다. 호러물에서 노래가 나오면 보통 분위기를 고조시키거나, 저주받아서 들으면 안 된다는 등의 압박감을 준다. 그런데 이 만화는 잔잔한 분위기다. 그것도 고요하면서 음산해서 여러 의미로 피해를 주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으로 묘사된다. 여러모로 금단의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주면서, 작중에 나오는 기묘한 요소가 작중 인물에게만 한정되지 않고 독자에게까지 영향을 준다는 점은 아주 높게 평가할 만하다. 괜히 이 단편이 걸작이라 불리는 게 아닌 듯하다.

 

 

바치는 사람

 어느 동네에 선물을 나눠주는 청년이 있다. 문제는 선물이 전부 남자의 형상을 한 기묘한 목각인형이라 모두에게 기피대상으로 여겨지는데...

 엄청난 반전을 가진 스토리라 인내심을 가지고 봐야 하는 내용이다. 전반적으로 보면 어른들 싸움에 생각지도 못하게 덤터기를 쓴 청년의 안타까움이 부각된다. 이토 준지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라는 기분도 잠시, 문제의 목각인형에 대해 알게 되면 흔히 알던 그 공포 만화가 분명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리

 할머니의 연락을 받고 방문한 외딴 마을. 그 마을에는 오래 전부터 특이한 장례 풍습이 있었는데...

 외딴 마을이 배경이면 무언가 특이한 풍습으로 공포를 조성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나오는 장례 풍습은 특이점은 있어도 딱히 주술적이라던가, 불경한 부분이 있다든지 그런 건 없다. 단지 지박령이 생겨나는 굴레로 보였다. 그것도 물이라는 음기 가득한 매개체라면 죽음이 고여 버리고도 남겠다는 인상이다.

 

 

서커스가 왔다

 어느 동네를 방문한 서커스단. 그런데 이 서커스단의 공연은 어딘가 심상치 않은데...

 잔혹 서커스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줘서 여러모로 충격을 준다. 크게 잔인한 묘사는 없지만 어딘지 모르게 빠져들게 만들면서 익살스러운 악마의 농간이 섬뜩하다 할 수 있다. 작중에 나타난 모습을 보면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 같으면 저렇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확신하고도 남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는 정말 단순한 걸로 유혹하며 상식 밖의 일을 어떻게든 가능하게 만든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인 이상 불가능이란 없다고 볼 수 있다. 3권에서의 <사이렌 마을>에 나타난 악마는 직접적인 이미지를 보였던 것과 비교하면 이번 악마는 외형보다는 심리적인 부분을 파고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벌집

 벌집 수집이 취미인 남자친구. 그와 함께 오랜만에 벌집을 찾아다니던 중, 예전에 목격했던 신비로운 아이를 떠올리는데...

 벌레 종류를 이용한 호러는 무엇이 나오든 비슷비슷한 호러 묘사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만화의 경우는 뭔가 전형적이면서도 나름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다. 다소 기괴하며 경이로운 자연 친화적 분위기 속에서 인간의 인과응보를 다룬 내용이라 일방적으로 집어삼켜지는 호러는 아니다. 그래서 작중에 나온 벌들은 거의 가공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공포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겠다. 어딘가 소름끼치는 벌집의 무늬라든지, 독침이나 벌집에 모여 있는 그 모습 자체로 두려움을 주는 벌의 이미지라든지.

 

 

지도마을

 신혼여행을 가던 중, 방문하게 된 어느 마을. 이 마을은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쉽다고 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백주대낮 동네에서 길을 잃는 다는 공포는 없겠지만, 작중에 묘사되는 시대적 배경을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곳도 아니고 흔히 알던 일상적인 곳이 갑자기 고립적인 분위기로 가득 채우며 비현실적으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길을 잃었을 때의 심리인데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기묘하게 압박감을 가하는 구성을 보며 얼핏 보면 단순한 소재를 극대화 시키는 것 역시 이토 준지의 장기 중 하나로 보인다.

 

 

머리 없는 조각상

 개인 전시전을 위해 머리 없는 조각상을 만들던 미술 선생님. 그런데 다음 날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제목만 보면 무슨 내용일지 금방 감이 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스토리가 예상된다 해도 어떻게 묘사될지는 전혀 알 수 없는 게 이토 준지 만화의 묘미다. 생각보다 괴기스러운 묘사가 압도적이라 스토리 공백을 충분히 매워준다고 본다.

 

 

박명

 어느 날, 갑자기 예뻐진 여학생.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없이 죽어버린다. 이후 그 여학생과 접촉했던 다른 여학생들도 갑자기 예뻐지고, 아름다움이 전염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

 외모를 소재로 한 호러가 여럿 나왔지만 대부분 토미에처럼 특정 캐릭터를 이용한 그로테스크한 연출을 보여주는 형식이었다. 반면, 이 만화는 그로테스크한 묘사가 전혀 없이 잔잔하면서도 더욱 더 직접적으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한다. 특정 인물이 아닌 다수에게 벌어지는 일이라 그런지 집단적 상황을 두고 벌어지는 사건이 대부분이다. 외모 때문에 죽고, 외모 때문에 죽어도 상관없고, 외모 때문에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며 이렇게까지 외모에 집착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던진다. 세기말이라고 굳이 언급하는 부분도 꽤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마치 외모지상주의라는 병이 창궐할 것이라는 예언 같다.

 

 

한기

 옆집에 사는 여자 아이에게 무슨 병이 있나 보다. 자꾸 의사가 드나들고 그때마다 비명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그 의사가 낯설지 않다. 분명 어릴 적에 본 기억이 있다...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묘사가 폭발하는 내용이라 여러모로 주의가 필요하다. 내용 자체는 잔잔하며 신비스러운 느낌이긴 한데, 그 안에서 나타나는 호러가 만만치 않다. 제목이 한기라 추운 내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단순하지 않다. 단순히 추운 걸로 사람이 극단적으로 한기를 느끼는 게 가능할까. , 그걸 가능하게 하려면 과연 사람이 어떤 상태가 돼야 할까? 묘사는 엄청나지만 과정이 다소 생략되어 있어서 미지의 공포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허수아비

 결혼을 반대하는 집안 때문에 자살한 여자. 여자의 아버지와 남자친구는 여전히 다투었고 홧김에 여자의 무덤 앞에 허수아비를 박아 놓고 만다. 그런데 그 허수아비가 자살한 여자와 똑같이 변하는데...

 허수아비도 나름대로 공포 소재거리다. 사람을 닮은 매개체라는 점에서 인형 공포의 연장선이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나오는 허수아비는 일종의 암시를 주는 매개체 같다는 인상이다. 그러니까 구천을 떠돌며 영향을 끼치는 귀신같은 것이 아니라, 사념이 실체화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것만 보면 그냥 기묘하다는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경우가 더 무서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접적인 말을 하지 않고 보내는 암시나 간접적인 표현은 생각보다 잔인하다. 무슨 의미인지 몰라도 무섭고, 설사 알아듣더라도 무섭기 때문이다. 불길함이 주는 공포란 바로 이런 것이다.

 

 

유서

 동생이 자살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유서가 발견된다. 유서에는 유령이 되어 저주하겠다고 적혀 있지만, 피가 많이 묻어 있어 저주의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데...

 반전 있는 하우스 호러로 보이는 내용이다. 여기서의 반전은 공포스러운 진실이 아닌 말 그대로 스토리적인 반전이라 호러 면에서 보면 크게 독특하지 않고 무난하다. 어떻게 보면 살짝 추리가 섞인 호러미스터리 같기도 하다. 유서부터가 추리소설에서 보면 단서 같은 것이고 그걸 풀어내는 게 전반적인 스토리라 그렇다. 살짝 허무할 수도 있는 결말이지만 괴기스러움으로 가득 채워 끝내는 경우보다는 깔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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