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시공사
일본 만화
★★★★☆
이토 준지의 대표 캐릭터하면 단연 토미에다. 죽여도 죽지 않는 불사신의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 토막 나면 여러 명의 토미에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엄청난 미인이라 대부분의 인물들은 토미에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하다가 처참하게 무너진다. 토미에의 재생능력이 플라나리아와 비슷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증식 관련된 부분을 작가가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인지 암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초창기 단편 1편에서의 토미에는 단순히 죽어도 살아 돌아온다는, 어떻게 보면 흔한 소재를 기괴하게 나타낸 정도로 보였다. 그냥 귀신같은 걸로 했어도 괴담 같은 느낌을 낼 수 있었는데, 이토 준지 스타일에서 이렇게 만들면 재미없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만들어내는 생물학적인 기괴함. 벗어날 수 없는 잔인한 굴레가 계속 반복 되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흉측하게 증식하는 모습까지. 이것이야 말로 토미에를 통해 나타나는 공포의 본질이다. 이 특징은 Part 2와 지하실까지 가다보면 점점 들어난다. 대체로 옴니버스 스토리지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여럿 있기 때문에 첫 단편인 토미에부터 저택까지는 사실상 하나의 스토리로 봐도 된다.
보면 볼수록 토미에는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묘사한 캐릭터 같다는 느낌이 든다. 토미에 때문에 발생한 사랑의 배신을 겪는 이들과 경호원을 자청하며 붙어 다니는 불량배 같은 인물들을 보면 모두들 사랑이라고 표현은 하고 있지만, 사실은 토미에의 외모에 대한 욕망에 가까웠다.
문제는 토미에는 외모가 예쁘지만 성격이 상당히 오만해서 여왕 행세를 한다. 멀쩡한 인간 관계에 끼어들어 박살내고서는 쓸모가 없어지면 바로 버리는 등, 아무리 봐도 분노하게 만드는 행동을 거침없이 보인다. 이런 토미에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서 배신을 당한다면 살의를 느끼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기어코 토미에를 죽여도 자신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며 다시 나타나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어으며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한다.
어쩌면 토미에는 외형만 인간이고 사실은 인간을 뛰어넘는 고등생물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며 그 속에 숨은 욕망을 끌어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끌게 만드는 모습을 현실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이런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단순히 예쁜 외모로 돈을 뜯어내는 수준과는 하늘과 땅차이다. 다만, 죽으면서 증식하는 부분은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본능이 아니라 토미에에게 내려진 유일한 저주가 아닐까 싶다. 무엇하나 두려울 것 없이 큰소리 치고 다니는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에게 있어 가장 큰 흠이자, 이런 존재에게서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도록 내린 양측 모두에게 잔혹한 저주.
세상의 모든 외모지상주의와 그것을 이용해 한 사람을 이용해먹고,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상실한 모습이 이런 것일까. 적당히 갖고 놀다가 지겨워지면 갈아 치우면서 배신과 상실로 마음의 상처를 주는 행태가 토미에라는 캐릭터로 결집되어 나타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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