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준지/시공사
일본 만화
★★★★★
이토 준지 만화는 징그러운 비주얼 때문에 함부로 볼 만한 건 아니다. 이런저런 공포물을 접한 나에게는 재미면에서 꽤 만점이지만. 주로 단편작품이 많은 와중에 이 소용돌이는 평가가 꽤 좋은 대표적인 장편 만화다. 처음볼 때는 단순히 소용돌이를 소재로 세계관이 공유되는 단편 옴니버스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점점 거대해지고 징그럽게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의 실체를 보게 될 것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고유의 문양인 소용돌이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소용돌이는 흔히 떠올리는 단순한 것부터 예상치 못한 곳에서까지 나타난다. 이렇다보니 주변에 소용돌이가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다. 그래서 진짜 소용돌이가 모든 걸 집어 삼켜도 이상하지 않을듯하기도 하다.
각 에피소드에는 소용돌이 문양처럼 비틀리거나 빨아들이고, 방향감각을 잃게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등장한다. 용수철이나 달팽이, 머리카락, 태풍 같이 실체적 요소들이 있는 반면 사람과의 틀어진 관계, 뒤틀린 집착 같은 비실체적 요소들도 등장한다.
실체적 요소들은 징그러울 정도로 배배꼬인 소용돌이 비주얼, 괴기하게 비틀린 현실의 모습을 나타내어 혐오스운 시각적 공포를 보여준다. 괴기하게 비틀린 물체의 모습이라면 몰라도, 단순한 소용돌이 문양까지 괴기하게 그려진 부분은 꽤 충격받을 부분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내 손에 있는 지문의 소용돌이까지 징그럽다고 여겨질 정도다.
비실체적 요소들은 사람과의 갈등을 만드는 드라마적 요소로 쓰이다가 파멸로 이끄는 내면적 공포를 주고 있다. 이 부분은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사람들 간의 심리를 다루는 부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시각적인 부분에 비해서 다소 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공포 앞에서 흔들리는 심리 상태는 상당한 압박감을 주기 마련이다. 눈에 보이는 소용돌이는 곧 심리까지 장악할 것이다. 간신히 잡고 있던 이성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 배배꼬인 끝에 광기에 사로 잡혀도 이상하지 않다.
소용돌이가 절정에 다다르는 결말 부분은 많은 이들이 좀 허무하다라는 얘기를 많이한다. 흔히 코스믹 호러 장르의 끝이 이렇게 끝나는 경우를 많이 본 입장에서는 나름 인상적이라는 생각이지만. 결말의 모습은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이기려하지만 결국에는 자연의 순리를 이기지 못하고 동화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으로 보였다. 지금 현재도 그렇게 보인다. 자연을 상대로 훼손을 가하면 가할 수록 자연은 더욱 강력한 태풍과 기상변화로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언젠가 자연의 형체가 점점 커져 사람이 손을 써도 해결하지 못하는 때가 온다면 결국 집어 삼켜지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용돌이의 결말과 거의 비슷한 모습으로 보일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이번 합본판에만 실려 있는 단편 은하가 있다. 은하 또한 소용돌이 모양이라 이 소재로 무슨 내용이 전개될지 기대될만 하다. 은하는 자연을 넘어서 우주가 만든 형상이기 때문에 뭔가 더 거대하고 미지의 느낌이다. 마을을 잠식해오는 장편 소용돌이와는 다르게 우주적 느낌이 강해서 같은 소재로 성격이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본다. 우주에 있는 은하는 직접적인 외형으로 마을에 접근하지 않지만 정신적으로 접근하면서 이전에 나온 소용돌이들 보다 한층 고차원적으로 보였다.
뒤틀리는 인간 관계가 결국에는 파멸로 이어지는 형태는 이전 소용돌이 작품에서 나온 패턴이기는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전에 나온 소용돌이들에 비해 잔잔한 편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럼에도 여기서 나온 소용돌이, 즉 은하는 본편 만큼이나 무서운 요소인 것은 변함이 없다. 아무리 인간이 무언가를 크게 만든다해도 언젠가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우주의 별과 행성, 그들이 모인 집합인 은하까지 간다면 말이 다르다. 아마 은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소용돌이일 것이다. 거기에 단순한 물체가 아닌 우주에 있는 천체다. 본편에서 모든 걸 다 보여줬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 땅 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주까지 간다면 무엇을 보여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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