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piria
기괴한 행위예술과 불안한 분위기가 만드는 난해함
★★★★
어떤 작품이든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려야 한다고 본다. 화려한 연출, 배우의 연기력, 음악, 배경 고증 등등. 다른 것들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한들 분위기를 못 만들면 뭔가 부족하다는 인상이 남기 때문이다. 깊이감이라든가, 길게 가는 여운? 아무튼 그런 걸 말하는 거다. 물론 분위기가 너무 강해도 문제 되기도 한다. 뭐든 농도가 너무 진하면 호불호가 생기고도 남는다. 깊이가 있어도 너무 깊어 난해 하다 던지.
전반적으로 보이는 스토리는 냉전시대 서독의 어느 무용단에 새로 들어온 미국인 무용수가 겪는 기괴한 일을 다룬다. 원작이 스릴러 경향이 강하다고 들었는데 리메이크는 영 성격이 딴 판이다. 스릴러처럼 시작했는데 정작 나오는 건 심리 호러에 가깝다. 거기에 스토리 분기 마다 막으로 구분 짓고 무용이다 못해 행위예술에 가까운 동작들이 많이 나와서 연극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것도 아름답고도 잔혹한 어둠의 연극.
작중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은 잔잔하면서 깊어지는 듯한 인상이다.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하고 칙칙한 빛을 띄는 화면. 냉전 한복판이었던 서독의 혼란상이 종종 비춰지는 와중에 첫 화면부터 등장하는 불안함이 가득한 소녀. 건물 내부구조에서부터 느껴지는 무용학원의 폐쇄적인 느낌. 종종 보이는 말라붙은 피처럼 보이는 짙은 붉은색이나 고동색. 화면 전환이 느릿느릿한 와중에 나타나는 인물들의 돌발적인 행동이나 기괴한 장면.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무용과 외설적인 장면. 간혹 나오는 잔인하다 못해 징그러운 장면. 각 막마다 1, 2개씩 나오는 정도고. 후반부 들어서는 마구 쏟아지는 경향이 있어서 갈수록 기분 나쁜 인상이 강해진다고 볼 수 있다.
대체로 초반부터 상황만 주어지고 구체적인 설명이 거의 없다. 몇몇 장면은 무슨 의미로 넣은 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고. 그래서 원작에 대한 정보 없이 본다면 무슨 상황인지 금방 파악이 안 될 수도 있다. 뭐, 그래도 스토리 구성이 심하게 꼬아져 있는 것까지는 아니라서 아예 이해 못할 것까지는 아니다. 내부인인 무용수들의 시점에서 나타나는 무용단에서 일어나는 기괴한 일. 외부인인 요제프 클렘페러 박사의 시점에서 보이는 쓸쓸함과 죄책감, 그리고 보조 해설을 겸해서 점점 무용단의 실체에 다가서려는 움직임. 문제가 되는 난해함은 결말에 가까운 극 후반부에 해당된다. 갑작스럽게 끔찍한 장면들이 쏟아지는 와중에 온갖 정보들이 범람하는 탓에 침착하게 정리할 틈이 없다. 반전 요소로 나오는 정보. 그 동안 스토리상으로 쭉 나오던 마녀, 분단된 독일에서 일어나는 사건, 각종 상징 등의 정보. 어디서부터 어떻게 끼워 맞춰야 하나 애매할 뿐이다.
마녀와 흑마술을 소재로 위선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작중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는 정치적 내용과 상징물을 보면 더더욱. 자유분방함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실제로 보여주는 건 규율과 잔혹한 형벌. 겉으로는 온갖 고귀한 척은 다하면서 본질은 본능적이다 못해 추악한 욕망으로 가득 찬 본 모습. 어린 학생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하면서 본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 먹는 사실상의 착취행위. 난해한 스토리 속에서 이런 부분은 유독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편이라 보기에 따라 또 다른 역겨운 요소라 할 수 있다. 그냥 이미지로서 나타나는 잔인하고 더러운 것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온갖 깨끗한 척을 하며 본연의 추악한 본질을 숨기는 짓이란. 가식의 끝이 있다면 바로 이 영화에 나오는 마녀들일 것이다.
또 어떻게 보면 지독한 블랙 코미디로 보이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위선적인 면이 보이긴 하나 그 모습이 천박하기 짝이 없다. 마녀라 해놓고 하는 짓이 겨우 저거 밖에 안 된다던가. 거창한 계획을 꾸미는 것 치고는 의외로 허술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던가. 갑작스러운 돌발 상황에 침착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한다던가. 결말부의 잔혹한 장면은 이 블랙 코미디의 절정이라 봐도 무방하다. 엄청난 피바다를 나타내는 잔인함과 징그러움 그 자체지만, 그 동안 나오던 추함을 넘어 추태에 가까운 촌극이 되고 마니까.
기괴한 아름다움이냐. 추악하고 잔인한 욕망의 본질을 다룬 블랙코미디냐. 또는 시대적 아픔과 위선자들을 형상화한 오컬트 호러냐. 그걸 판단하는 건 개개인의 생각에 달렸다. 이 영화는 보여주는 것이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확고한 답을 정해놓지 않은 거나 마찬가지라 그렇다. 심오하게 본다면 몇 번 씩 돌려보며 분석하고 의미를 해석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영화로서 보자면 그저 징그럽고 기분 나쁜 묘사만 넘쳐나는 지루한 영화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뭐가 됐든 궁금하면 직접보고서 판단하자.
누군가에게 망상을 심을 수 있다면 그게 종교죠. 그게 나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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