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minator: Dark Fate
매정하게 시작했으나 특별한 매력이 없는 평작
★★
새로운 미래, 새로운 인물. 시대가 바뀌면 그 흐름이 바뀐다고 한다. 보통은 기대할 만한 문구지만 결과물이 시원치 않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아무런 비전 없이 과거의 실수와 오판이 되풀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다. 멀쩡히 있던 작품에 먹칠을 해 가치를 떨어뜨리게 만드는 건 덤이고. 갈수록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 탓에 믿을만한 감독이나 제작자가 추진했으면 하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이건 감독이나 제작자의 문제가 아닌 듯하다.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명작이라 불리던 1, 2편 이후로 그 동안 속편이 많이 나왔다. 나름 신선한 설정과 변화, 리부트까지 해서 여러 가지 시도가 있었는데, 대부분 좋지 않은 평가와 함께 사장되었다. 그런 탓에 원래 감독이었던 제임스 카메론과 전작의 배우가 복귀한다는 소식은 많은 기대를 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터미네이터 속편을 볼 수 있겠구나 하고. 누가 알았겠는가. 더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줄은. 심지어 평이 좋지 않았던 이전 속편 중 몇몇을 재평가해야 될 정도라니.
진정한 속편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던 이 영화는 오리지널 사라 코너인 린다 해밀턴의 복귀와 새로운 인물, 그리고 신종 터미네이터의 등장까지 해서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뭔가 지나치게 파격적이라든지, 하는 지적이 은근 있는 편이긴 했으나 제임스 카메론이 제작했으니 그러려니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미 터미네이터 1, 2편만 해도 그 당시에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편이기도 했고. 그러나 막상 공개된 결과물은 이렇다고 해야겠다. 겉만 파격적이고 내부구조는 전혀 발전되지 않은 구식.
일단 이 영화가 시작하고서 처음으로는 주는 충격이라면 매정함이다. 어떻게 보면 질리고도 질린 과거의 래퍼토리를 잘라낸다는 의미로 보일 수도 있다. 물론 좋게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굳이 터미네이터 팬이 아닌 그냥 전작을 알고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봐도 시작부터 이렇게 했어야 하는 충격이 앞선다. 어느 정도 납득이 가고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갔으면 모를까. 이건 대놓고 넌 이제 저리 꺼져, 하는 식으로 매몰차게 내팽개친 거나 다름없다.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여기저기서 난입하는 신규 캐릭터의 강렬함과 세계관 재정립이 어떻게 됐는지 알아가는 걸 보여준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이전 스토리 라인의 재탕이나 다름없다. 결국에는 또 미래에서 터미네이터가 나타난 것이고, 미래에 활약할 인물을 지켜야 되며, 추격전 속에서 때려 부수고 폭발하고. 문제는 이게 전작보다 발전했다면 모를까 오히려 퇴보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1차원적인 단순한 캐릭터에, 새로운 성장형 캐릭터를 넣어 놓고선 특별한 매력 없이 그냥 띄워주기에 바쁘고, 복귀한 원년 캐릭터는 설정구멍만 발생시킨다. 액션이나 연출 면에서 부족한건 없다. 오히려 과하면 과했지.
신종 터미네이터는 어떻게 보면 신선해 보일 수 있어도 이미 그 동안 나온 영화들에서 봤던 거나 다름없다. 뭐, 새로운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예를 들면 감정 표현이나 말투를 친근하게 하는 등의 자연스러운 면에서 새로운 섬뜩함이 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장면에서 좋지 않은 의미로 불도저 같은 인상이 강하다. 폭주하듯이 가차 없이 몰아붙이는 압박감은 상당하나 그거 하나만 주구장창 나와서 문제다. 인간과 닮은 겉모습으로 자연스럽고 치밀하게 잠입해 오는 암살자 같은 면모가 터미네이터의 매력인데 이건 너무 단순 무식하지 않은가. 초반에는 강렬한 인상을 줬을지는 몰라도 계속 닥돌만하는 건 그대로라 점점 신선함이 떨어져 오히려 역효과를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조금씩 뜯어보면 새로운 요소라고 넣은 대부분이 이전 터미네이터 영화에서 봤던 것들이다. 이전 작품들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과도하게 부각되는 것이 너무 많은 탓에 그 정도를 넘어섰다고 본다. 사실상 짜집기나 다름없이 해놓고 신상이라 내놓은 것이다. 이건 곧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아무런 아이디어 없이 그저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 파격적으로 비틀면 그만이라며 내놓은 안일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여전히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재탕의 또 재탕이라는 최악의 선택을 함으로서 또 다시 추억의 명작에 먹칠을 하고 만다.
이쯤 되면 한 가지 궁금해지는 게 있다. 왜 터미네이터 영화는 항상 메인 전투가 벌어지는 미래가 아닌 현재 시점이자 과거만을 다루는가. 그것도 늘 똑같은 래퍼토리로. 4편인 미래 전쟁의 시작이 유일하게 미래 시점을 다루는데, 예전에 봤을 때는 살짝 별로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아마 지금 다시 보면 오히려 신선하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만 사는 터미네이터는 이제 질리고도 질렸다. 제발 좀 앞으로 나가는 전개 좀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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