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engers: Infinity War
압도적인 적의 숭고한 여정과 그 끝에 찾아오는 깊은 충격
★★★★★
극한의 상황은 언제나 존재한다. 단지 그게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준비를 하려고 해도 기반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의견충돌이 생기는 등, 내부적 사정으로 인해 시도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로 언제나 경계를 하며 탄탄히 대비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는 것처럼 극한의 크기 역시 예측이 불가능한 것도 알아야 한다. 이 말인 즉, 아무리 대비를 철저히 한다 해도 반드시 감당한다는 보장이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사이드로만 등장하다 드디어 전면에 나타난 최강의 적, 타노스. 그의 행보는 극한의 상황이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한편으로, 악당이 가지고 있는 사상과 신념을 두고도 여러 논의와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저 정복과 파괴, 지배가 악당의 전부라고 생각되던 것과 차원이 다른 깊이 있는 목적. 분명 악당인데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비장함이 보이기까지. 매력적인 악당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일 테다.
영화 초반부터 타노스의 무지막지한 강력함을 어필하고 수하인 블랙오더들이 곳곳에 들이 닥쳐 선제공격을 하면서 분위기를 압도한다. 어벤져스 1편에서 로키가 등장했을 때와 비슷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무게감부터 차원이 다르다. 로키는 침략자다운 위협과 스케일을 보여주면서 적어도 싸울만하다는 느낌 정도는 있긴 했다. 그런데 타노스는 저걸 도대체 어떻게 이겨,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 정도로 충격과 공포를 선사한다. 마치 이런 거라 보면 되겠다. 게임의 마지막 최종 보스가 어느 정도일지 기대하다 드디어 직접 실물을 처음 경험할 때의 강렬함.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든 걸 쏟아 붓겠다는 걸 망설임 없이 보여주는 충격. 여기에 진심을 다하지 않고도 여유롭게 대응이 가능할 정도의 전투력이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최종 보스 전에 걸맞게 더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서 예상 밖의 조합을 많이 볼 수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닥터 스트레인지, 스파이더맨, 블랙 팬서. 이들의 나름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기존의 어벤져스와 달리 각자 자신의 활동 영역 이외에는 절대 모습을 들어 내지 않는 점이다. 일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우주가 주 활동 무대고 리더나 다름없는 스타로드(피터 퀼)는 지구에 별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에 연결점이 없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마법사라는 위치로서 초현실적인 문제를 제외한 현실적인 문제에 개입을 자제하는 편이고. 스파이더맨과 블랙 팬서의 경우는 지구에서 활동하기는 하나 자신의 활동 영역 이외의 사건에 끼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나마 연결점이 있는 경우라고도 볼 수 있다.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면서 반쯤은 걸치고 있다 볼 수 있고. 블랙 팬서는 통치 국가인 와칸다가 폐쇄적인 국가였지만 인피니티 워 시점 들어서 본격적으로 개방하기 시작했으니. 어쨌든 이렇게 각자의 활동 영역에서만 자리를 지키던 이들까지 인피니티 워에 개입하게 된 것만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타노스가 그 만큼 엄청난 위협이라는 걸.
핵심요소이자 타노스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발휘되는 인피니티 스톤의 위력 역시 상상 그 이상이다. 사실 몇몇의 스톤이 가지는 위력은 이전 마블 영화들에서 간간히 묘사되긴 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 처음 보여주거나 생각지도 못한 연출이 많다. 어떤 스톤은 진짜 능력이 밝혀지기도 하고. 여러 스톤이 모이는 자리인 만큼 엄청난 활용도가 나오기까지 한다. 우주급 스케일이란 말을 해도 부족할 정도라고 하면 과연 상상이 될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타노스의 사상적 부분은 이 영화에서 다룰 수 있는 최대 논쟁거리다. 그는 완벽한 균형을 추구한다. 무작위로 절반을 없애면서 나머지를 구원한다는 방식으로. 문제는 이것이 악의가 아닌 선의이자 사명이라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는 공리주의라는 사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실현시키자는 이론이자, 윤리를 기반으로 한 사상이고 가장 좋은 결과를 불러올 행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이를 가장 간단하게 알 수 있는 예시로 누구나 한 번 쯤 봤을 그림이나 문제가 있다(정확히는 트롤리 딜레마라는 윤리적 사고실험으로 생각보다 복잡한 것이지만 예시로 든다.).
기차가 곧 있으면 두 가지 갈림길이 있는 곳으로 가고 있다. 한 쪽에는 사람 1명이, 반대쪽에는 사람 여러 명이 서 있다. 중간에는 레버를 조작해서 기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과연 어떤 선택을 해서 누구를 살려야 옳은 것일까.
물론 이 문제는 어디까지나 사고실험으로서 현실적인 상황을 배제한 경우다. 또한 얼핏 보면 공리주의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 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과 전혀 다르다. 공리주의에서는 어디까지나 최대 다수는 집단이 아닌 개인을 우선시 하고 있다. 특정한 하나를 대표하는 최대가 아닌 개개인의 행복 하나하나를 모아 최대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해 개인의 행복을 희생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공리주의에 따라 최대 행복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도덕적이지 않는 경우라면 윤리적인 사상으로서 틀렸다는 비판이 나오기는 한다. 타노스의 경우처럼 말이다. 사상적인 논쟁이 스토리상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지다보니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닌 사상과 사상의 대결, 또는 합리와 광신의 충돌이라 봐야 한다.
다양해진 캐릭터 구성은 후반 전투를 더욱 화려하게 만들어주기 충분했다. 더욱 업그레이드 된 아이언맨의 기술력, 정신없게 몰아붙이는 스파이더맨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타노스와는 또 다른 최강이자 화려한 마법의 정수를 보여주는 닥터 스트레인지.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와칸다에서의 대규모 백병전은 유례없는 장관을 보여준다.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엄청난 수의 적, 공성전을 연상시키게 하는 융단 폭격과 상상도 못할 거대 장비들까지. 각 히어로들의 특성이 최대로 발휘되고 신선한 연계 조합이 많은 연출이라 더욱 몰입이 되는 것도 있다.
이렇게 크게 놓고 보면 엄청나지만 아무래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자잘한 단점으로 생각되는 부분이 보이기 마련이다. 와칸다 전투가 최고의 하이라이트이긴 하지만 백병전 치고는 약간 애매하게 나타낸 감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분명 집단 대 집단으로 싸우는데 닥돌하는 위주의 전투가 대부분이다 보니 살짝 기대 이하라는 평가가 나올 만 하다고 본다. 밸런스 문제 때문에 몇몇 캐릭터의 활약을 축소한 부분도 그렇다. 단순한 전투력 측정기로 끝내버리거나, 심각한 자체 너프를 줘서 활약을 거의 못하게 만든 경우인데 스토리의 짜임새를 위한 것이라지만 꽤 아쉬운 부분이다. 타노스가 생각보다 약하게 나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전투 스케일과 밸런스를 생각하면 적절하다 해야겠다. 아무리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캐릭터라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이기는 방식만 보여주면 그것도 그것대로 루즈하게 만들 위험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원작 만화라면 이것저것 가능했을지 몰라도 상업 영화는 어느 정도의 완성도와 상영 시간을 따질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매체 간의 차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거대한 장관만큼이나 엄청난 충격을 선사하기에 다음 후속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다음 편은 어떻게 될까. 어떤 스토리가 전개 될까. 이 캐릭터는 어떻게 됐을까. 어릴 적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느꼈던 그 기대감을 영화에서도 느끼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냥 후속이 나온다고 했을 때는 설레는 정도였다면, 이건 뜨겁고 흥분된다. 마지막 장 직전에만 느낄 수 있는 바로 그런 것 말이다.
브라이트번/더 보이(2019) (0) | 2019.05.25 |
---|---|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 (0) | 2019.05.20 |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0) | 2019.05.03 |
어벤져스(2012) (0) | 2019.04.24 |
요로나의 저주(2019) (0) | 2019.04.2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