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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공포증

도서 BOOK/소설 NOVEL

by USG_사이클론 2019. 9. 19.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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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공포증

 

배수영/몽실북스

한국 소설

★★★★☆

 

 끔찍한 기억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망각의 너머로 숨겨버린다. 굳이 주변에 알려서 좋을 것도 없고 기억해 둬봐야 현재의 나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영원히 기억하면서 고통 받거나, 잊어버리고 살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사람의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언제 어떻게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의 나를 덮칠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갑작스럽든 의도적이든 말이다.

 비행기 조종사 한준은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중, 갑작스러운 엘리베이터 사고를 당한다. 그런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발작을 일으키면서 병원에 실려 가게 된다. 병원에서는 햇빛 공포증이라는 희귀병 판정이 내려지고, 담당의인 주승의 최면치료를 통해 과거의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면서 한준은 점점 고립되어 가는데...

 주인공 한준을 점점 고립시키고 압박해오는 전개와 그 뒤에서 잔혹하게 계획을 진행시키는 인물의 그림자. 이 둘의 구도가 상당히 가까운 곳에서 인접해 있고, 과거 강제 입원이 가능했던 시절의 정신병원하면 많이 떠올릴 법한 긴장감과 답답함이 강하게 느껴진다. 문제는 단순 불법 의료현장을 다룬 것이 아니라 특정인물의 과거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다. 즉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해당되기 때문에 무엇이 정확한 사실인지 파악하기까지 오래 걸린다. 일관성이 보인다면 모를까, 각자 자신의 시점과 느낌을 중심으로 주장하는 기억들이기 때문에 진위여부를 가리기 어렵다. 그래서 당사자들 간의 해결점을 찾기가 어렵고 상황만 악화되어 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주로 현재 시점과 윤곽이 뚜렷하지 않은 과거의 시점이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과거 문제가 중요 쟁점이긴 하나, 표면적으로는 정신병동 강제입원이라는 의료적 문제가 나타나 있어 두 가지의 미스터리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의 미스터리가 보이는 차이점은 이렇다. 의료적 문제에 대한 부분은 독자 시점에서 파악이 되는 상황을 작중 인물이 어떻게 풀어나가는 가를 보는 형태고. 과거 문제는 현재의 한준이 겪는 일과 과거 시점을 통해서 추측해나가는 형태다. 공통점이라면 양쪽 다 긴장감과 스릴을 준다는 것이다. 물밑에서 아무도 모르게 벌어지는 불법 의료 현장을 고발하는 과정. 뚜렷한 윤곽을 알 수 없지만 아주 끔찍한 광경으로 가득 차 있는 과거의 모습. 이렇게 현재와 과거 양쪽에서 압박을 가하는 구도라 긴장감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차차 밝혀지는 망각 너머의 기억은 상상 그 이상으로 참혹하. 어느 한 쪽의 문제라 할 것 없이 모두가 피해자이자 가해자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기를 넘어 과도한 혐오감으로 물든 열등감. 어른들의 문제로 인해 피해를 보는 아이. 미숙한 감정 표현으로 인해 생겨버린 깊은 오해.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의도치 않은 비극. 일종의 나비효과 같은 걸지도 모르겠다. 사소하게 벌인 일이 점점 커져서 미래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악순환. 누가 먼저 시작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집착하고 책임을 전가할 시간에 나 자신을 돌아보고. 그만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기만족을 위해 남을 없애야 한다는 건 곧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또한 자신이 벌인 행위의 영향은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결국 쓸 때 없이 집착할수록 시간 낭비하고 망가지는 건 자기 자신이다.

 작중의 의의는 확실히 이해할만 하다. 결말 역시 묘한 분위기로 인상 깊게 보였고. 하지만 과거에 대한 부분이나 정신병동 내의 긴장감을 깊게 다룬 나머지 마무리가 살짝 급한 감이 있어 보인다. 촘촘하게 만들어 놓은 덫을 하나하나 간파하다가 마지막에 허를 찌르는 것까지는 좋았다. 확실한 증거물이 나오는 과정도 충분히 개연성 있고문제는 현재 시점을 다소 난잡하게 끝내고 과거의 진실을 정리하는 파트로 넘어가 결말을 낸 것이다. 허망함과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걸 나타내려는 의도로 볼 수 있긴 하다. 그러나 전반적인 흐름으로 봤을 때는 뭔가 마무리 지을 만한 곳이 아닌 곳에서 뚝 끊은 것 같은 인상도 적지 않다. 약간 붕 떠버렸다는 느낌과 비슷하다. 현재 시점 한정으로 열린 결말이라고 한다면 나름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살짝 아쉬운 느낌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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