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츠지 유키토/한스미디어
일본 소설
★★★★
과거는 때때로 현재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저 기분 나쁜 추억 정도로 생각나면 모를까, 현재의 일상에 영향을 주기까지 한다면 악몽 그 자체다. 거기에 그 과거가 정확하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것대로 더 끔찍한 상황은 없을 것이다. 나는 모르지만 상대가 아는 나의 과거. 이런 게 과거의 그림자라는 것이 아닐까?
살인을 부르는 나카무라 세이지의 건축물. 그 4번째인 인형관. 외형적인 면부터 보자면 구조나 스케일부터 남다른 수차관과 미로관에 비하면 평범한 축으로 보였다. 십각관도 특정 도형 형태라는 점을 빼면 약간은 평범한 축이긴 하지만, 인형관은 과거와 현대 양식이 결합된 점 외에 별다른 외적 특징이 없고 이전 작품과 달리 도심 속에 위치해 있어서 고립된 환경 같은 것에서도 벗어난다. 그래서 미로관까지의 이전 작품들과는 약간 이질적인 분위기다.
화가 히류 소이치는 연락을 끊고 살던 아버지가 살다 돌아가신 교토의 저택으로 어머니와 이사를 오게 된다. 일본 전통가옥과 서양식 저택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만으로도 기묘한데, 조각가였던 아버지가 만든 기괴한 마네킹이 저택 곳곳에 있는 탓에 더욱 기묘한 분위기를 느낀다. 한편, 거리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살인사건이 이어지고 소이치에게도 의문의 살해위협이 다가오는데...
주연 인물인 히류 소이치가 화가인 점과 약간 고립적인 면을 보면 수차관에서 나오던 후지누마 기이치와 비슷해 보였다. 뭐, 내용상 수차관과의 약간 연관성이 있어서 노린 것일지도 모르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전 작품들과는 이질적인 분위기가 상당한데, 가장 크게 두드러진 점은 흔한 저택 미스터리 형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이다. 보통 저택 미스터리하면 외딴 저택의 집 주인이 사람들을 초대하고, 모두가 모인 상황에서 모종의 사건이 벌어져 거기에 우연히 탐정에 해당되는 인물이 있어서 사건을 수사하는 구조다. 그런데 인형관은 시작부터 그 반대에 해당되어 보였다. 주연인 히류 소이치가 집주인이나 마찬가지지만, 그가 집에 오기 앞서 손님에 해당되는 인물들이 먼저 있는 것이 그렇다. 또, 이렇게 볼 수도 있다. 처음에 원래 집 주인에 해당되는 인물인 아버지가 있었을 때는 보통 저택 미스터리 구성 그 자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집 주인이 히류 소이치로 바뀐 시점에서는 반대에 구성이 된 것뿐만 아니라, 소이치도 집에 대해 모르는 상태이니 소이치는 집 주인이자 동시에 손님에도 해당되는 기이한 위치라는 생각이다.
이렇다보니 저택 미스터리 치고는 다소 낯선 형식으로 전개된다. 주연인물의 1인칭으로만 전개 되서 다른 인물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고, 직접적인 탐정역할이 등장하지 않아서 정확한 정보가 무엇인지 해깔리 게 한다.
사건 역시 세세한 느낌보다는 어딘가 한정적인 장면만 보여주고, 큰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자잘한 사건만 벌어지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추리의 단서를 찾아야 하는지 답답할 것이다. 이걸 보면서 저택 미스터리가 왜 개방적인 곳에서 벌어지지 않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저택 안의 용의자도 신경 쓰이는 판에, 의외의 인물 몇몇이면 모를까 불특정 다수의 외부인까지 용의선상에 올라가는 것만큼 복잡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형관은 정통 저택 미스터리에 벗어난 만큼, 추리나 사건을 보는 시점도 정통적인 방법과 다르게 보아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냥 작가가 벌여놓은 판이 어떤 구조인지 지켜보는 것이 더 편하게 보는 방법일 것이다.
이질적인 작품답게 결말 역시 상당한 충격인데, 호불호가 상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작가의 의도대로라면 모든 가정과 사실을 전부 파괴하고 나온 의외의 결말. 또는 나름 긴장감 있게 만들어 놓고 기대를 벗어난 어이없고 허무한 결말. 이 때문에 이 작품이 관 시리즈 4번째 작품이면서도 미로관 이후의 텀으로 만든 외전 같기도 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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