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미 엔/아르테
일본 소설
★★★★★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시절 사진이 언제,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던 시간이 있었다. 한정된 분량에서 한정된 장면을 잘 찍으려 노력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사진관은 정겨운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재 다양한 카메라들로 무한정으로 찍을 수 있게 된 지금, 점차 축소되는 사진관만큼 그때의 정겨움도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지금도 멋진 사진이 나오지 않는 건 아니다. 다만, 한장 한장에 담긴 여운이 깊게 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옛날 사진일수록 뭔가 깊은 여운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가쓰라기 마유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운영하던 사진관을 정리하러 고향 섬을 방문한다. 카메라하면 진절머리가 나지만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하던 마유는 인화를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사진을 발견한다. 그 사진 속에는 몇 십 년 간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찍힌 남자가 있었고 마침 사진 속 남자가 사진을 찾으러 방문하는데...
비블리아 고서당 작가다운 소소한 분위기와 쓸쓸함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사실, 사진관이 폐업한 분위기에 인물들 사이에서 크게 밝은 분위기가 없기 때문에 쓸쓸함에 더 크다 할 수 있다. 사진하면 좋은 기억이 남고는 한다만, 니시우라 사진관의 사진에서는 좋은 기억이 그렇게 많지 않은 모양이었다.
주로 의문의 사진을 가지고 사연을 알아내는 과정이 주 내용이다. 사진과 관련된 전문 지식이 나와서 설명을 보충하고, 주인공의 관찰력이 대단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사진을 가지고 추리하는 과정이 주인공의 머릿속에서만 전개 되서 자세히 서술되지 않고 그냥 결론만 도출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상당히 싱거울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남모르게 자만심을 가진 적이 있어서 마유의 사연에 공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나에게 특출 난 점이나 자랑할 만한 이력이 있다고 한들, 그걸로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함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자만 때문에 자기혐오에 빠지고, 말실수 하지 않기 위해 묵언으로 생활한 때가 작중 마유의 상태와 거의 비슷했다. 지금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어디에선가 실수를 하지 않았는지 생각하는 게 많다. 내가 알고 판단하고 있는 게 잘못된 것인지, 의도가 없었지만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든 건 아닌지.
현대의 필름카메라에서 디지털카메라까지만 접해본 입장에서 오래된 사진기의 원리와 암실의 이용, 그리고 옛날의 사진기술을 보면서 상당히 신기했다. 옛날에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 과정이나 나오는 과정을 생각하면 그 가치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그냥 필름이 없으면 다시 만들어 낼 수 없는 희귀성이 문제가 아니라, 그 시절 그 장면을 찍을 때의 과정까지 담겨 추억 자체라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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