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유키코/박하
일본 소설
★★★★☆
도가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한다. 굳이 균형을 이루는 게 아니더라도, 특정된 하나가 많아지면 문제가 발생하고 만다. 생물학적으로 발생하는 질병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중독물질을 언급하는 것 외에도, 뭐든 이에 해당될지도 모른다. 수많은 예시가 많음에도 고충증은 쉽게 언급하기 어려운 걸로 가장 불편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대기업 사원인 남편과 입시 준비에 들어간 중학생 딸과 함께 고급 맨션에서 사는 주부 마미. 부족할 것 없는 삶이지만, 무료함을 느낀 나머지 마미는 남편 몰래 세 명의 남자와 정사를 즐긴다. 비밀스러운 생활과 주부로서의 생활의 경계를 지키며 지내던 중, 정사를 즐기는 남자 중 한 명이 정체불명의 질병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데...
분위기는 국내에서도 그리 낯설지 않은 불륜 드라마 느낌인데, 그냥 치정 싸움이 전부였다면 충격적인 작품이란 말을 듣지 않았을 것이다. 성적인 부분을 상당히 수위 높게 표현한 것만으로도 보기 힘들게 하는데, 거기에 작가가 작품의 모티브로 삼은 기생충이 소름 돋는 역할을 해서 고충증은 암흑 그 자체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이 음침하고 징글징글한 내용의 끝이 한없이 궁금해지는 건 왜일까? 이 가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아니면 도대체 무슨 사건인지 알고 싶어서?
온갖 불쾌한 분위기 속에서 현대인들이 가지는 일종의 경멸 속에서 오는 모순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이 남아있다는 걸 낙후된 것으로 여기거나, 기생충이 생길 수도 있는 걸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생각한다던가, 알고는 있어야 할 성적인 걸 지나치게 숨기는 경향. 전부 자연스러울 수도 있는 걸 이상하게 받아들이는데, 사람도 원래부터 자연에서 진화했다는 걸 생각하면 심각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어릴 적 나쁜 기억으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사람이 특별하다는 인식이라면 외계인이라 불리고 싶다는 건가.
소재도 소재였지만, 고충증에 나타난 미스터리 구성은 충격 그 자체였다. 분명히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범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인사건이라면 모를까 출처를 알 수 없는 사건이라는 미스터리로 진행된다. 그래서 사건의 주범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독자가 알아가는 게 관점이다. 여기에 인물들 간의 인상이 시시각각 달라지는 상황까지 겹쳐서 멀쩡해 보였던 사람이 나중에 가서는 엄청 수상해 보이는 등, 그 누구도 평범해 보이지 않게 된다.
에로틱하다느니 징그럽다느니 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무섭게 보인 것은 태연한 척하면서 온갖 악의를 품은 사람이다.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좋은 약품이나 건강요법에 매달리는 일이 흔한데, 정작 눈 앞 가까이 있는 것의 직접적인 위협에는 너무 쉽게 노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 보였다. 아니면 우리가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은 그저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 진짜 보이지 않는 위협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내 몸 안에 불청객이 들어오는 게 징그러운 일이지만, 가족 안에 타인이 끼어드는 것만큼 징그러운 일이 더 있을까.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