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북스피어
일본 소설
★★★★★
사람의 원한은 깊을수록 오래 남는다고 한다. 그 원인이 무엇이고 진실은 어떠하든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먼 세월의 흐름 속에서 뼈대만 남아 있을 시점에는 그저 이유를 알 수 없는 재앙이 돼버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먼 옛날의 일이라도 어딘가에 흔적이 남기 마련이다. 비록 사실 그대로가 아닌, 겉으로만 들어난 단면에 불과하겠지만.
산겐초의 공동주택에 거주하던 양초상인 기치지가 죽었다 살아났다는 소문이 돈다. 신비한 능력을 가진 오하쓰는 행정 부교의 명을 받고 어딘가 믿음직하지 못한 우쿄노스케와 함께 조사하러 나선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기름가게의 기름통 안에 던져진 아이의 시체와 엮이면서 소란을 겪는다. 겨우 사건이 정리 되는가 했더니 또 다시 아이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지는데...
에도 시대를 배경으로 한 탐정 수사물에 가깝지만 특이하게도 범인에 해당되는 존재가 사람이 아니다. 여기에 걸맞게 메인 주인공인 오하쓰도 평범하지 않다. <말하는 검>에서 미리 접했지만 영혼을 감지하는 부분만 빼면 몇 번을 봐도 극도로 발전된 사이코 메트리라는 생각이드는 초능력이다. 보조로 끼어드는 우쿄노스케라는 인물도 유명 가문 출신에 어리숙하면서도 진지할 때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게 나름대로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보통은 홈즈역할, 왓슨역할을 나누어서 보는 편인데 오하쓰와 우쿄노스캐는 딱히 구분을 지어야할지 애매하다. 오하쓰는 기이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다는 점에서 홈즈역할이지만, 시대적 배경이라는 제한 때문에 현실적인 조사가 어려운 위치다. 반면 우쿄노스케의 경우는 사건의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 오하쓰를 보조한다는 부분에서는 왓슨역할이지만, 직접적으로 현실 조사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보니 실질적으로 홈즈 위치다. 이렇게 보면 오하쓰와 우쿄노스케는 홈즈와 왓슨의 역할을 번갈아가면서 한다고 봐도 되겠다.
아코 사건이라는 과거의 역사적인 부분으로 만든 미스터리는 생각보다 큰 무대를 만들어냈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역사적 사건의 숨겨진 이면, 시대의 풍파에 휩쓸린 이들이 가진 뿌리 깊은 원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어서 불행을 겪은 이들. 세세한 일본 역사 속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잘 모르고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관심 있게 봤다.
대부분 사건과 연관된 인물이 높은 신분에 해당되는 이들이라는 점이 은근 묘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계급이 높을 수록 잘 산다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한 법이라 그 안에서도 명예나 체면의 문제 때문에 알려지지 않은 일들이 여럿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민들보다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게 있었거나, 이해받지 못하는 일이 많고, 때로는 옳지 않더라도 억지로 해야 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주신구라의 형태로 남았다지만 당사자가 아닌 이들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 참 애석한 일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설령 거짓이라 해도 유포되기 쉬운 법입니다. 거짓은 때로 진실보다 알기 쉽고 아름다운 형태를 갖고 있는 법이지요. 잔혹하기는 하지만 세상의 진리 중 하나입니다.”-235p
<말하는 검>에서도 그랬지만 오하쓰 시리즈는 유독 결말 부분의 연출이 꽤 웅장하다는 느낌이다. 다시 반복되는 그 날의 현장. 오랜 세월을 내려온 원한과 현 세대의 격돌. 그리고 격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소신을 지킨 이. 단순히 원한을 해결하는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닌 잘못된 걸 끊어내는 형태다. 원한을 이해를 못한다는 건 아니다. 단지 아무리 힘든 시대, 부당한 대우를 겪었다 해도 옳고 그른 것은 가려서 판단하자는 의미라는 생각이다. 미미부쿠로에 실린 흔들리는 바위도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상황에서 자신의 소신을 두고 고민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나타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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