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케모노 프렌즈(2017)

애니 ANIMATION/TVA

by USG_사이클론 2019. 1. 15. 05:12

본문

케모노프렌즈1

 

けものフレンズ

기업의 횡포로 얼룩진 비운의 명작

★★★★★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나오던 처음 보는 애니를 발견하고는 한다. 어릴 적에 새로운 애니를 접할 때 광고를 본 것 외에는 대체로 이랬다. 요즘은 사전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많다. 관심 가는 애니는 미리 점찍어 놓고 방영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그만이다. 그럼에도 우연히 접하는 방식은 아직도 유효하다. 대체로 기대하지 않던 걸 우연히 보게 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이게 뭘까, 하고 궁금해서 잠깐 본다. 그런데 생각보다 괜찮다. 다음 스토리나 이전 화는 무슨 내용일까. 내가 케모노 프렌즈를 접한 것도 이런 방식이었다.

 첫 인상은 딱히 작화를 크게 따지는 편은 아님에도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디자인은 괜찮은데 어딘가 어색한 3D 모델 정도였다. 캐릭터도 동물 의인화한 미소녀 동물원 정도라는 인상이었다. 이렇게만 보면 상당히 별로라는 느낌을 주지만, 이게 전부였다면 끝까지 봤을 리가 없다. 참고로 나는 스토리와 캐릭터의 완성도 위주로 보는 타입이다. 외형과 연출의 완성도와 중요성을 모르는 건 아니다. 가끔 식 예외적일 때도 종종 있고. 하지만 전체적인 스토리에 이런저런 문제가 많으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샌드스타라는 물질로 의인화 된 동물, 즉 프렌즈들이 사는 자파리 파크. 다양한 습성의 프렌즈들이 사는 만큼 각 지역의 기후나 생태도 천차만별이다. 그 중 하나의 지역인 사바나 지방. 이곳에서 사는 서벌은 처음 보는 인물을 만난다. 못하는 게 많지만 기발한 아이디어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줄 아는 대단한 친구인 가방. 서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가방을 도와주기 위해 함께 모험을 떠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문제를 해결한다.

 초반 스토리만 놓고봐도 처음부터 흥미로운 점이 꽤 많다. 딱 봐도 사람처럼 보이는 가방이라는 캐릭터의 정체성, 가방에게만 말을 거는 파크 관리 로봇 럭키비스트, 프렌즈를 위협하는 정체불명의 괴생명체 세룰리안, 다음은 어떤 환경의 장소고 어떤 프렌즈가 나올까. 대체로 기본적인 설정과 스토리상 중요하게 다룰 요소만 작중 인물들의 대화로 언급된다. 그 밖의 나머지는 배경을 통해 나타난다. 주목할 부분은 세계관 설정이나 흔히 떡밥이 될 요소들을 크게 강조하는 편이 아님에도 궁금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걸 보면 작중 설정을 짜놓고 어떻게 매력적으로 풀어내야 하는지 볼 수 있다. 캐릭터를 통해 이런저런 걸 다 다루면 상당히 난잡해진다. 그렇다고 만들어 놓고 써먹지 않으면 그냥 설정놀음이 된다. 또, 이런 게 있다고 지나치게 강조하고 떠먹여주면 흥미를 깎아 먹기 마련이다.

 캐릭터 부분을 보자면 단순 의인화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모델이된 동물의 특성이나 상징성을 살리는 걸 볼 수 있다. 이런 요소가 없었다면 그냥 다자인만 각양각색이고 비슷비슷한 네코미미 캐릭터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연 인물인 서벌만 봐도 고양이과 동물답게 고공 점프를 하고 할퀴는 공격에 고양이들이 무언가를 가지고 놀 때의 행동을 보여준다. 각 에피소드 별로 나오는 다른 캐릭터들도 예외는 아니다. 따오기는 울음소리가 이상하다는 특징을 살려 노래를 못 부르고, 비버는 댐을 만드는 특성을 살려 만드는 걸 잘하고, 올빼미과 동물은 지식을 상징하는 것 답게 똑똑이 캐릭터다. 중간 중간 나오는 아이캐치에서 부가 설명까지 나오니 실제 동물 이미지와 매치된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다만, 8화의 아이돌 캐릭터로 나오는 펭귄 그룹은 딱히 특성을 살리는 요소가 없다는 게 살짝 흠이다. 다음 화가 진행될 수록 등장하는 프렌즈들이 점점 지성 있게 나온다는 점을 감안해도 너무 흔한 아이돌물 스토리 형태다.

 이외에도 동물 같은 사고방식도 눈여겨볼 특징이다. 단순하게 생각한다든지, 천진난만하게 행동하다 종종 사고치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유쾌하다. 개나 고양이한테서 볼 수 있는 댕청미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고증에 맞는 연출을 보여준 탓인지 각 캐릭터에 해당되는 실제 동물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이전에는 저런 동물도 있구나, 하던 정도에서 더 친근한 이미지가 생겼다고 할까. 내가 알고 있던 동물의 종류는 겨우 이거 밖에 안 됐다는 생각도 들어서 더 찾아보기도 하고. 멸종 문제가 더 심각하게 느껴지고. 평온하게 지내는 야생동물만 봐도 웃게 되고.

 사실, 첫 1화만 보고서는 이 애니가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2화, 아니면 3화까지는 봐야 그 진면모가 보인다.(여기까지 봐도 별 감흥이 없으면 취향이 아닌 걸로. 취향차이 존중합니다.) 무엇을 하든 엄청 신나고 재미있고 못하는 게 있어도 괜찮다고 하는. 어릴 때 이후로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또 있을까. 못해도 괜찮다는 말은 언제 또 들어본 적 있었을까. 힘들 때는 도와주고, 못하는 게 있으면 잘하는 걸 찾아주고, 내가 못하는 것이라도 칭찬해주고. 보면 볼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부분이다. 하하 호호 즐겁기만 할 것 같은 스토리는 결말이 다가올수록 다소 무거운 요소가 늘어나고 다소 충격적인 전개와 함께 감동을 준다.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차츰 쌓여가던 자잘한 요소들이 완성되면서 나오는 전개이기 때문에 뜬금없지 않고 더욱 몰입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멋진 기억으로 남은 애니는 후속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적인 꿈보다 냉혹한 현실이 먼저 다가왔다. 느닷없이 감독 강판 사태가 벌어지고 이 애니의 스토리는 좌초되었다. 여러 잡음이 들리는 것도 모자라 거의 리부트 형식으로 2기가 제작됐다. 명확한 해명이나 속 시원한 전말은 밝혀지지 않고 가면 갈수록 기업의 횡포만 들어나는 실정이다. 이 애니가 나오기 전까지 케모노 프렌즈 프로젝트라는 IP가 가망이 없다는 말이 많았다. 앞서 나온 코믹스는 평가가 좋지 않고, 게임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서비스 종료됐다. 앞으로의 행보가 불투명한 가운데 이 애니가 새로운 길을 열어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스스로 추락의 길을 선택한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까.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좌절할 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저 환상적인 스토리가 허망하게 사라지게 돼서 안타까울 뿐이다.

 먼 미래에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가능성을 염원해보는 정도 밖에.

 

'애니 ANIMATION > TV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좀비 랜드 사가(2018)  (0) 2019.08.01
케무리쿠사(2019)  (0) 2019.07.21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