ケムリクサ
아무리 힘든 환경이라도 좋아하는 것과 함께라면
★★★★★
무엇을 좋아하느냐. 금방 답이 나올 질문이면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어렸을 때는 간단한 것이라도 좋다고 쉽게 말했지만 가면 갈수록 좋다는 것의 본질이 뚜렷해지지 않는다. 값어치를 매겨야 하는가. 의무감이 있어야 하는가. 큰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남의 것과 비교대상이 돼야 하는가. 최신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가.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가. 이런 탓인지 좋아하는 게 딱히 없다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오는 환경이 된 것 같기도 하다.
감독의 이전 작품에서 있었던 사건으로 인한 애착이기도 했지만 이 애니의 밑바탕이 된 기원이 있어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케무리쿠사는 2010년에 단편 애니로 먼저 나온 거라 사실상 리메이크라 할 수 있다. 보통 리메이크를 생각하면 원작 파괴 같은 완성도 문제를 걱정하겠지만 이 애니는 원작자가 직접 하는 리메이크다. 게다가 작중 곳곳에 자잘한 설정과 복선을 남겨 전반적인 내용과 세계관에 대해 궁금하게 만드는 걸 잘한다는 게 검증된 감독이다. 여러모로 기대할 부분이 많다. 본격적으로 방영되기 이전부터 0.X화 형태로 조금씩 밑밥이 놓아지기 시작했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전반적으로 보여 지는 내용은 세 명의 자매들이 정체불명의 빨간 벌레들로부터 살아남아 생존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다. 이것만 봐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게 상당하다. 세 명의 자매는 어떤 인물인지, 빨간 벌레는 뭔지, 또 배경이 왜 포스트 아포칼립스인지. 기존에 존재하는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애니가 아닌 오리지널 애니라면 이럴 수밖에 없다. 각 에피소드의 흐름을 따라가며 등장인물이나 주변 배경을 통해 전반적인 스토리와 세계관을 차차 알아가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다음 본방송이 나오기까지 사소한 것 하나하나 조명하면서 스토리와 설정을 예상하는 등의 재미도 솔솔 하다. 이런 부분이 오리지널 애니 만의 최대 장점이라고 본다.
세계관 특성상 어두운 분위기로 예상되지만 주요 인물들은 생각보다 밝게 나온다. 귀엽고 발랄한 리나, 엄마 같은 푸근함이 느껴지는 리츠, 진지해 보이지만 의외의 모습이 많은 린, 호기심 많은 와카바. 그냥 봐서는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일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로드무비 형태로 진행되며 적어도 정해진 목표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일을 겪는 와중에 각 캐릭터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지 차차 알아 가면 배경과의 연관성 문제는 금방 해결된다. 벌레라는 위협적인 존재 때문인지 은근 나오는 액션신은 생각보다 타격감이 좋게 나오는 편이나 보통 생각하는 애니처럼 길게 나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스토리 진행을 위한 하나의 작은 요소일 뿐이라 길고 박진감 넘치는 걸 기대했다가는 실망하고도 남지만 전반적인 스토리가 전부 받쳐주기 때문에 액션이 적다고 아쉬울 건 없다.
생존이 메인이라고는 했지만 자세히 보면 등장인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는 걸 볼 수 있다. 대체로 딱히 거창한 것은 아니고 아주 단순한 것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원초적인 호기심에서 나올 법한 것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다보니 겨우 저런 걸 좋아한다기보다는, 저렇게 좋아하는 것을 가까이에서 찾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무언가 대가를 치르는 것도 아니고, 복잡한 과정도 없이 그저 좋아하는 것에 매우 적극적으로 열중할 수 있는 것. 게다가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주는 분위기다보니 보면 볼수록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더욱더 주연인물들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커진다.
차차 스토리가 진행되며 캐릭터들의 정체와 세계관에 대한 의문도 더욱 커져간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시작점이라면 하나하나 알아 가면 무언가라도 보이는 건데, 이 애니는 오히려 확실한 뼈대를 가지고 있으면서 각종 정보를 흩으려 놨다는 인상이다. 시작점과 도착점은 분명히 있는데 그 중간의 순서와 방향이 파악이 안 된다고 보면 된다. 이렇다보니 다양한 추측을 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른 다양한 충격을 겪을 수 있다. 첫 인상과 예측은 이러 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전개 된다든지. 각종 등장 요소들이 뜻밖의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든지. 이런 스토리 구성을 통해 놀랍고 흥미로운 전개를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대략적으로나마 알 수 있어 보였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저예산 제작이다 보니 작화 및 연출 오류가 종종 보이긴 한다. 특히 마지막화가 제작 기간에 비해 이것저것 다룰 움직임이 많아서 그런지 유독 두드러지게 보인다. 심각하게 거슬리는 편은 아니나 여러모로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다만 블루레이로 발매될 때 자잘한 작화오류나 퀄리티를 보완하는 감독과 제작사의 특성상 제대로 된 완성본을 기대할만하다. 처음이라면 몰라도 이미 검증된 부분이 많기에 더욱 그렇다.
전체적인 스토리가 사실상 스포일러이기에 자세히 말하지 않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다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 결말까지 보고나서 1화부터 다시 보게 될 거라고. 그럼 처음 봤던 것과는 또 다른 색다른 느낌을 받을 거라고. 무언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동기와 목적을 주는지 아주 깊게 느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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