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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랜드 사가(2018)

애니 ANIMATION/TVA

by USG_사이클론 2019. 8. 1.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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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랜드사가

 

ゾンビランドサガ

단순한 특이 병맛 아이돌물로 보기 아깝다

★★★★☆

 

 아이돌 애니를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캐릭터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스토리를 보는 편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아이돌 애니 대부분은 거의 비슷비슷한 래퍼토리거나, 뚜렷한 무언가가 없다는 인상이라 내 스타일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그냥 흔히 있는 취향 차이 정도라 하면 되겠다. 내가 싫다고 그걸 정말 좋아하는 이들까지 뭐라 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하니까.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으니 이 부분에서는 존중할 줄은 안다. 그렇게 인연이 전혀 없을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않는 경로로 좋아하게 될 만한 아이돌 애니 하나를 접하게 됐다. 그리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돌 애니가 주는 의미를.

 처음 이 애니에 관심이 갔던 건 좀비라는 단어에 끌렸기 때문이다. 제목만 보면 좀비가 나오는 호러 애니인가,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다 실상은 아이돌물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거부감이 들면서도 좀비랑 아이돌이 무슨 관계가 있을지 상상이 가질 않아 잠깐만 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1화 초반부터 이게 뭔가 싶은 정신 나간 연출로 벙지게 만든 걸 시작으로 마지막 화까지 전부 보게 됐다. 처음으로 아이돌 애니를 끝까지 전부를 본 것이다.

 이 애니는 죽었던 사람을 좀비로 살려내 아이돌을 구성한다는 내용이다. 그것도 일본 큐슈의 사가 현 홍보 애니 겸으로. 심지어 작중 메인 스토리 역시 사가 현 살리기다. 제목의 사가가 북유럽 신화에서 말하는 서사시라는 단어가 아닌 사가 현을 지칭하는 것이다. 웃기게도 서사시의 사가와 사가 현, 둘 다 영문으로 SAGA로 쓰는 탓에 이런 낚시가 가능했다. 뭔 이런 어이없는 설정과 기획이 있냐 싶겠지만 전부 사실이다. 하나의 장르가 오래 지속되다 보면 그 안에서 온갖 이상한 혼종이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것도 그런 비슷한 부류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 애니는 뼈대 있는 스토리와 설정을 가지고 있다. 동기, 목적, 복선, 떡밥 등. 겉으로 보기에 평범한 아이돌 애니 설정과 비슷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의 스토리나 캐릭터들 개개인의 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하게 만든 요소들이 대부분이다.

 작중의 좀비 설정부터 상당히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좀비하면 식인을 하고 감염시키는 전염성 좀비를 금방 떠올릴 것이다. 대부분의 좀비 영화하면 이런 형태고 좀비 아포칼립스 공식이나 생존 규칙까지 있을 정도고. 그런데 좀비의 유래를 되짚어 내려 가다보면 나오는 원조인 부두교 좀비가 있다. 부두교 좀비는 죽은 사람을 살려 냈다는 것이 전부지만 대신 주술로 살려냈기 때문에 주술사의 지시대로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설정이다. 초기 좀비 영화나 좀비 소설에서 나오는 좀비 대부분이 다 이런 모습이었다고 한다. 좀비 랜드 사가의 좀비들은 이런 클래식한 부두교 좀비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다만 주술사의 지시대로 밖에 움직이지 못한다는 설정은 살짝 현실적으로 해석한 듯한 느낌이다. 좀비라는 걸 들키면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이 사실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의 주도 하에 움직여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작중의 좀비가 된 주연 인물들을 보면 자율적으로 움직이고 스스로 생각하는 탓에 딱히 강제적인 부분은 없다. 단지 현재 상황에서 좀비인 상태로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별 수 없는 것이다.

 1화만 봐도 이 애니의 정체성을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막나가는 것처럼 보이면서 어딘가 말이 되는 전개. 아이돌 애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캐릭터들을 마구 굴리며 연출하는 미친듯한 개그센스. 그럼에도 훈훈하고 밝은 의미를 주려고 하는 분위기. 뭔가 되게 복합적이지만 이후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습과 하나하나가 돋보이도록 최대한 신경 쓴 스토리, 여기에 아이돌 애니의 하이라이트인 화려한 공연무대가 돋보이면서 상당한 매력이나 다름없게 된다. 웃긴 건 웃긴 대로, 아이돌다운 건 아이돌답게, 좀비스러운건 좀비답게. 뭔가 엄청난 짬뽕 조합 같지만 어느 하나가 과하게 튀지 않고 적당한 선을 지키는 게 보이긴 한다. 예를 들면 8화에서 밝혀지는 반전요소의 경우 심각한 호불호 요소가 될 수도 있었는데 납득할만한 설정과 자연스럽고 감동적인 에피소드로 커버해서 나쁘지 않은 인상으로 남았다. 게다가 이후 에피소드에서도 반전 캐릭터성을 과도하게 어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렇듯 취향적 호불호 문제가 아니면 대체로 적당히 넘길만하다.

 온갖 요소를 섞은 혼종이 될 법했던 이 애니를 가장 주목받게 만든 것이라면 아마도 확고하게 잡은 주제일 것이다. 이 애니의 주제를 정리하자면 꿈에 대한 좌절과 트라우마 극복이다. 작중 캐릭터들의 생애나 설정들을 차차 알게 되면 금방 이해할 수 있다. 그냥 결성된 좀비 아이돌이 아니라는 걸. 한창 꿈이 많을 어린 나이에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게 가지는 의미. 꿈의 문턱 앞에서 겪는 좌절, 그것도 노력하는데 주변 환경이 도와주지 않아 발생해서 더욱 큰 상처가 된 트라우마의 깊이. 꿈과 장래에 대한 문제와 좌절 문제는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을 문제라 충분히 공감된다. 이렇듯 좀비 요소를 통해 생전에 못다 이룬 꿈이라는 걸 강조하게 만들어 그냥 평범하게 실패와 좌절을 나타낸 것에 비해 더 극적인 감동을 준다. 꿈과 희망을 주는 아이돌. 그게 바로 이 애니에 나오는 좀비 아이돌이라는 생각이다.

 약간의 단점이라면 몇몇 에피소드가 상대적으로 재미와 스토리면에서 별로인 점이 많아서 전체적인 평가를 깎아먹는다는 것이다. 3화의 아이돌 애니에서 흔히 볼법한 스토리 구성. 9, 10화에서의 별 감흥 없이 너무 늘어지는 스토리 구성이 그렇다.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서 재미, 스토리 간에 불균형한 인상이 강하다보니 첫 입문할 때 가장 보기 힘든 부분이라 생각한다. 공연 장면의 3D 모델링도 어색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점점 보기 나쁘지 않게 개선되기 때문에 조금 아쉽다는 정도로만 해두겠다.

 나름 깔끔한 엔딩을 내버렸지만 다소 해결되지 않은 떡밥 요소들이 여전하기에 2기가 나오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다. 각 캐릭터들마다 개성은 충만하고 떡밥 외에도 진행시킬 스토리는 꽤 있으니까. 후속을 기대하던 애니가 여럿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기다려지는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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