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덕/아르테
일본 소설
★★★★☆
사람은 언제 망가지는 걸까.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그런 기질이 타고나서 어쩔 수 없는 경우. 또는 그런 사람이 멀쩡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꼬드겨서 시궁창에 빠뜨리는 경우. 또 어떤 이는 멀쩡한 사람을 주변 환경이 망가뜨리는 경우.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사람이 망가진다는 게 어떤건지 쉽게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 같은 현실을 보면 위에 나온 예도 반드시 정답일지 의문이 든다. 아니, 도대체 무엇이 사람을 망가뜨리고 그 현실에 무기력하게 침식되고 마는 걸까.
죽고 싶어지면 전화해는 그 답을 확실하게 알려주지 않지만, 망가진다는 것의 현실이 어떤 것인지 알려주면서 그 느낌을 토대로 독자 스스로 답을 찾게 해주는 것 같았다.
삼수생 도쿠야마는 어느 이른 아침에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함께 단란주점을 방문한다. 한껏 치장한 여자들에 둘러싸여 즐기는데, 유독 하쓰미라는 여자가 분위기를 묘하게 만들어 도쿠야마는 점점 당황하고 만다. 이후, 자취방에서 공부할 때마다 하쓰미가 도쿠야마에게 끊임없이 연락해 온다. 마치 도쿠야마의 여자친구 마냥 접근하는 통에 도쿠야마 본인은 불쾌해 한다. 그런데, 한 번 속는 셈치고 그녀와 동물원에 다녀온 후 도쿠야마는 점점 망가져가는데...
사람이 제대로 망가지는 과정이 나오는데, 그냥 퇴폐적인 것도 아니고 철없는 행동의 끝을 보여주는 것처럼 단순한 과정이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그런 수준과는 전혀 다른 나락의 길이라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마음이 복잡해질 지경이다.
처음에는 나를 망치는 세상과 맞서는 듯 해서 나름 통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그 끝은 사람을 시궁창 밑바닥까지 처박히게 만들어서 도대체 이렇게 비참한 현실로 이끄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따지고 싶을 정도였다. 하쓰미가 원흉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중에서 일을 벌이는 건 도쿠야마 자신이고, 하쓰미를 의심하고 싶어도 상황은 주변인물을 비롯한 세상 전체 때문이라는 느낌이라 결국에는 세상이 원흉이라는 결론이 나고만다.
어떻게 생각하든 추악한 현실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전개와 곳곳에서 등장하는 현재 진형형인 인간의 추악한 역사에 대한 논쟁을 보고서도 이 책이 나름 쉽게 읽어졌다.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절망적인 상황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구석이 많고,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왜 절망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보면 볼 수록 이 소설이 상당히 역겹다고 여겨질 만도 하다. 약간의 희망이라도 그저 현실을 직시 못하는 망상에 치부하고, 작은 꿈도 하찮게 보며 말도 안 되는 허상이라 비웃으며 비관의 끝을 보여주는데 어떻게 좋은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끝까지 다 읽고나서 역겹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자신이 처한 현실은 좋지 않더라도, 그걸 개선하냐 망가뜨리냐는 결국 자신에게 달린 문제가 아닌가.
자신이 이렇게 된 현실의 원흉을 따지고 싶어질 때, 가장 의심하기 쉬운 게 바로 세상이다.
그리고 더 살고 싶다.
미래설계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너무 심각하게 들여다보면 좋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의 끝은 결국에는 죽음이다. 그걸 인식하고 살면 뭘하든 결국에는 죽는다는 생각에 비관적으로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 현재가 더 중요하게 보였다.
절망노트 (0) | 2019.01.16 |
---|---|
군중 속의 얼굴 [전자책] (0) | 2019.01.15 |
철서의 우리 [상, 중, 하] (0) | 2019.01.14 |
토탈 호러 1 (0) | 2019.01.14 |
야미 (0) | 2019.01.14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