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넬 로우레이로/황금가지
스페인 소설
★★★★☆
좀비가 나오고 생존 일기형식 형식으로 전개되는 내용이면 늘 그렇듯 떠오르는 요소들이 많다. 좀비를 피해 살아남고, 약탈자를 물리치고, 또 다른 생존자를 구하는 등의 뻔한 내용. 하지만 주인공은 직업이 변호사인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총도 제대로 쏘지 못하고. 시체가 널린 좀비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비위가 상해 버티질 못하는 등. 생존해야 하는 거친 상황과 거리가 먼 전문직 종사자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에 혼자 살아남기도 힘들 텐데 유일한 동반자인 고양이와 함께 하는 상황이다. 보통의 생존보다는 2배는 힘들 게 보이고도 남는다.
약간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잠수관련 해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상 맨몸으로 좀비 세상에 던져진 주인공에게 있는 유일한 능력이다. 질긴 잠수복의 특성으로 아슬아슬하게 감염을 피할 수 있고. 유일하게 잘 다룰 수 있는 무기인 작살 총으로 좀비를 처치하고. 그런데 주인공은 좀비를 죽이는데도 심각하게 죄책감을 가진다. 좀비가 알던 사람일 때 더욱 그렇다. 보통 좀비를 망설임 없이 죽이거나, 단순히 제거해야할 위협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한때 인간이었고, 어떤 가족의 일원이었고, 누군가에게 소중한 사람이었고, 가족 중에 누군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일일이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쓸 때 없이 구구절절하고 답답하게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걸 여러모로 깊이 있게 나타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될 만하다. 오죽했으면 좀비가 밖에 돌아다니는 상황에서 담배를 피우고, 술에 취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까.
주인공은 어떻게 보면 정말 운이 좋으면서, 한편으로 불운을 몰고 다닌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지 유리한 상황이 생기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쁜 일이 발생하는 래퍼토리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좀 원 패턴 구성으로 보이긴 해도 상황자체는 억지스럽지는 않다. 어느 정도 가능성의 무게를 둔 것들이 대부분이라 실제로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나친 우연으로 전개되어 보이는 부분은 비판적으로 볼 만 하다. 마치 주인공의 불행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는 걸 떡하니 알려주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다.
심리상태 묘사 면에서는 상당히 괜찮다고 본다.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갈수록 힘들어지는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현실감 있게 나타냈다. 계속해서 좀비를 죽이는데서 발생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이로 인해 점점 미쳐가는 듯한 모습.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좀비를 경계하느라 점점 날카로워지는 신경.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좀비물에 나오는 인물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정신력이 강하게 보였다는 걸. 아니면 이런 모습이 나올 초반이 생략되거나 묘사되지 않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부분만 본 거 같다 던지. 전쟁이 끝나고도 군인들이 후유증을 겪는데, 보통 사람이 좀비를 죽이고도 후유증이 안 생기는 것은 말이 안 될 것 같기도 하다.
다소 지나쳐 보이는 우연적 요소, 반려동물과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점 때문에 <나는 전설이다>의 아류작으로 보일 법한 점만 빼면 썩 나쁜 편은 아니라고 본다. 전반적으로 나름 현실감 있는 좀비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살 총을 든 변호사와 고양이의 앞날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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