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L. 파울러/황금가지
영미 소설/미국 소설
★★★★☆
치킨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곳곳에 치킨집이 많아진지 꽤 되었다. 후라이드, 양념을 기본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마늘, 파닭, 간장, 매운맛 등등, 여러 가지 형태로 개발됐다. 이렇게 많은 종류가 있고 다 좋아하지만 예전부터 특별히 먹고 싶었던 닭요리가 있다. 미국에서 주로 하는 닭요리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 모르지만 오븐에 구워서 만드는 것밖에 아는 게 없다. 그냥 생닭을 구운 것일 수도 있었지만, 굽고 튀기는 것 말고 특별한 맛을 내는 요리는 어떨지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와 비슷한 걸 유명 소설을 패러디한 치킨의 50가지 그림자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다.
냉장고 한 귀퉁이에 랩에 싸인 채 있던 생닭, 치킨 양. 매력적인 '칼잡이' 씨가 냉장고를 연 순간 바닥에 떨어져 그와 첫 대면을 한다. 치킨 양은 칼잡이 씨의 매력에 빠져들고, 한 번도 고급스러운 요리가 돼보지 못한 치킨 양을 위해 칼잡이 씨는 그녀를 고급스럽게 요리하기로 하는데...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소설 형식이지만 분명히 요리책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표현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무슨 닭 요리 하나를 하는데, 이런 쓸 때 없는 묘사가 나오는지 보면 볼수록 실소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자극적이라고 해서 선정성 있는 것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진지한 요리 과정을 이용한 일종의 개그에 가깝기 때문에 읽다가 배가 고파질 뿐이다. 선정적이면서 정말 맛있는 묘사라 하면 이해할 수 있으려나.
요리재료 생닭인 치킨 양과 요리사 칼잡이 씨의 묘한 관계를 그려가는 과정이 참 맛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자극적이며 웃기다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슨 요리사가 상체를 들어낸 채로 요리를 하지 않나, 생닭 주제에 손길을 느끼며 맛있게 요리되기를 바라지 않나. 거기에 요리를 해준다, 안 해준다 하며 밀당까지. 난생 처음으로 주방이 이렇게 야한 곳인지 생각도 못했다.
요리사와 생닭의 말도 안 되는 자극적인 로맨스이긴 하지만, 튀긴 치킨이나 백숙밖에 몰랐던 닭요리의 세계가 다양하다는 걸 보여준다. 각 파트마다 요리법과 관련 있는 내용이라서 한 번 심심할 때 거기 나와 있는 요리법으로 닭요리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물론 재료가 비싸면 쉽게 할 수 없기도 하고, 각종 향신료가 입에 맞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여러모로 생각해볼 점이 많긴 하지만.
다양한 닭요리 만드는 법을 접하고 싶거나, 요리사와 생닭이 주방에서 벌이는 일의 끝을 알고 싶다면 문제없겠지만 비슷비슷한 표현이나 분위기에 취약한 경우라면 중반 쯤 가서 약간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한 거라 그런지 반복되는 문구나 표현이 너무나 많다. 그나마 계속되는 요리 과정을 궁금하게 만들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패러디 대상이 된 소설과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책이 나와서 읽어봤지, 그냥 요리책이었으면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냥 요리할 때 참고할 책을 평소에는 읽을 필요가 없다고 느꼈던 것도 있었고. <치킨의 50가지 그림자>는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닭으로 할 수 있는 요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아무도 몰라줄까. 그렇다고 레시피만 나열되어 있는 요리책으로 내자니, 아무도 관심가지지 않을 테고. 이런 생각 끝에 나온 것이 패러디 소설 겸 요리책으로 나온 이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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