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마하/인디페이퍼
일본 소설
★★★★
예술의 의의는 무엇에 달려 있는 가는 복잡하다. 잘 그렸나, 색감이 좋은가, 구도가 좋은가, 무엇을 소재로 했냐, 어떤 재료를 썼는가, 어디에 그렸는가,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 보는 사람들은 저마다 이런저런 의견을 내기 분분하지만 정답을 말해주는 예술가는 없다. 자신이 무엇을 나타냈든, 그것을 통해 많은 이들이 어떤 형태든 간의 의미를 찾아내면 그만인 것이다. 예술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힘이 있으니까.
파블로 피카소는 말했다.
예술은 장식이 아니라 적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라고.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큐레이터 요코는 미국의 이라크 공습에 반대하는 의미로 게르니카를 메인으로 한 피카소 전시회를 기획한다. 문제는 게르니카 원본 대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 기자 카일의 생각대로 뉴욕 UN본부에 전시되어 있는 게르니카 복제품 대여를 염두하지만, UN에서 열린 기자회견 화면에서 전시된 게르니카가 검은 천에 가려진 상태라는 걸 보게 되는데...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 바탕이 되었고,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 반전주의를 표방하는 걸로 유명하다는 점까지. 소설은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렸던 당시와 현대의 시점이 교차되면서,이 세기의 걸작이 지금도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가지는지 충분히 보여준다. 예술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까지.
큐레이터가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꽤 복잡한 직업으로 보였다. 미술 전시회가 기획되는 과정과 전시 작품이 정해지는 과정을 보며 여러모로 꽤 준비가 필요한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전시회가 그냥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까지. 그림 하나로 예술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이어지는 예술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 전시회를 새로운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르니카가 제작될 당시의 피카소를 나타낸 부분도 꽤 인상적이었다. 시대적 상황에서 고뇌하는 예술가의 모습과 그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예술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피카소는 개인이면서 모두의 예술가였다. 그 어떤 위협에서도 지키고, 아무리 위험한 때라도 같이 따라가게 되는. 이 당시의 모습과 현대 시점을 번갈아 보면서 그가 게르니카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미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보고 분노한 게르니카는 아직도 세계 곳곳에 있을 테니까.
전반적으로 반복되는 설명과 구절이 많아서 살짝 거슬리게 보이긴 했다. 중요한 순간에 반복하는 건 좋지만, 시도 때도 없이 같은 구절이 나오면 솔직히 지겹게 느껴진다. 아마 반복되는 문장만 뺐어도 책 분량이 훨씬 적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내용 면에서도 살짝 아쉽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그리는 시점은 별 문제가 없는데, 문제는 요코를 중심으로 한 현대 시점이다. 겉으로는 엄청난 게 있다는 듯이 분위는 깔려있는데, 그걸 해결하는 과정이 너무 알맹이가 없다는 느낌이다. 서스펜스라면 긴장감을 줘야 하는데, 생각보다는 너무 잔잔하다는 느낌이다. 보통은 추격전이나 두뇌싸움 같은 요소로 긴장을 발생시키는 요소와 역할이 거의 없고 후반부에 살짝 나오는 정도다. 게다가 그 살짝 나오는 곳도 금방 상황이 정리되기 때문에 급하게 마무리한 듯한 인상이다. 오히려 피카소 파트가 더 서스펜스처럼 보일 정도라 도대체 어느 파트를 메인으로 둔 것인지 해깔리기도 하다.
예술가는 언젠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작품만이 남게 된다. 이 작품들을 지켜야하는 건 특정 인물들이 아니라 모두라는 구절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특정 계층만 취하는 것이 아닌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보여야 하는 것, 피카소가 말하는 진정한 예술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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