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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도서 BOOK/소설 NOVEL

by USG_사이클론 2019. 1. 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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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여름

 

교고쿠 나츠히코/손안의책

일본소설

★★★★

 

 장광설로 악명높은 교고쿠도를 방문해보니, 이렇게 큰 영향이 느껴지는 줄은 몰랐다. 독자마저 휘둘리는 정도일텐데, 현실과 환상의 세계에 걸쳐있는 세키구치는 어떤 느낌일지 대강 짐작이 갈 정도다. 다소 호불호가 갈리는 장광설에 대해서,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고 하고 싶다. 교고쿠도를 통해 양자역학, 민속학 등등을 듣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의미있게 보인다. 때로는 장광설을 보다가 왠지 모르게 웃기기도 하고.

 오랜 전통이 있는 산부인과 전문의 구온지 의원에 대한 기괴한 소문이 돈다. 밀실에서 청년 의사가 연기처럼 실종되고, 그의 부인은 기이한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소문을 들은 소설가 세키구치 다츠미는 구온지 의원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먼저 교고쿠도를 방문하는데...

 밀실과 기이한 임신 만으로도 사건이 범상치 않게 보이는데, 거기에 사건을 조사하는 인물들까지 범상치 않아서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작품이다. 주연 인물들만 한 명씩 집중적으로 다루다 보면 이래저래 이력이 심상치 않다.

 고서점 주인겸, 음양사로, 고서점 이름인 교고쿠도로 불리는 추젠지 아키히코는 작품 내에서 그다지 많이 등장하지 않았는데도, 특유의 다크포스와 장광설로 인한 강한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내용보다는 교고쿠도가 언제 다시나올지 궁금해서 빠르게 읽어나갈 정도다. 장광설 말고도 그가 경영하는 고서점이나 책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다보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기도 한다.

 작품 내의 화자인, 소설가 세키구치 다츠미는 평범한 현실도 귀신이 떠도는 공포의 공간으로 만드는 혼란스러운 정신의 소유자이다. 그렇다보니, 상대가 하는 말에 따라 분위기나 감정이 쉽게 휩쓸리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 교고쿠도와 에노키즈가 이 부분에 대해 놀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대놓고 무시한다기 보다는 왠지 모르게 관심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형사인 기바 슈타로는 주요인물 중에서 가장 현실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교고쿠도의 장광설과 에노키즈의 초능력을 보다보면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법한데, 그때마다 현실이라는 것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로 보인다. 그 어떤 말도 안 되는 일을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돌 같은 그의 인상과 아주 잘 맞는다.

 장미십자탐정사무소의 사립탐정이자, 초능력자인 에노키즈 레이지로는 교고쿠도 만큼 강한 인상이 느껴지는 인물이다. 교고쿠도가 점잖으면서 조용하게 한 방 날리는 스타일이라면, 에노키즈는 약간 산만하면서 거칠게 한 방 날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에노키즈와 교고쿠도를 빛과 어둠의 구도처럼 느꼈다. 초능력이 있는 캐릭터라 제멋대로인 성격만 아니었으면 사건을 순식간에 해결하고도 남았을지도 모른다. 초능력이 등장함으서 생기는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식으로 구상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건 작가 말고는 모를 일이다.

 잘못된 인연과 집안 대대로 내려온 신앙, 뒤틀린 모성이 가져온 괴이한 사건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일본의 가계구조가 특별한 경우가 많은듯 하다. 그래서인지 집안에서 정통성을 따지는 일이 유독 심한 모양이다. 거기에 잘못된 인연이 들어갔으니, 모든 것이 꼬이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것이다. 게다가 세키구치가 화자로 전반적인 내용을 서술하다보니 더 꼬이게 보이고도 남았다.

 어머니의 모성이 위대하다고는 한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발전한 모성은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기 보다, 생명에 대한 소유욕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에 실존하는 우부메는 이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죽음의 공포보다는 생명의 탄생에서 공포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세키구치가 조성하는 기괴한 분위기와 구온지 병원에서의 미스터리한 사건이 합쳐져 생긴 긴장감은 추리보다는 공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교고쿠도를 보면, 세상을 전부 알고 있다고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고 하기에는 세상에 미스터리한 것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밀실트릭은 정말 어이없을 정도라서, 말이 안 된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황당한 밀실트릭이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채널을 돌리려고 리모컨을 찾으려 할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도 있다리모컨이 가까운 곳에 있어도 그곳에 시선을 두지 않아서 찾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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