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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도서 BOOK/소설 NOVEL

by USG_사이클론 2019. 1. 25.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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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도미히코/예담

일본 소설

★★★★★

 

 정해진 시간이 오면 사라지는 밤이지만, 밤이 있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어둡고 깊은 느낌을 받는다. 세상이 만들어내는 어둠이고 해가 뜬다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간혹 이 밤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내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기도 할까. 아니면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에 속에서 무언가를 잃어버릴까봐 그러는 걸까. 생각해보면 낮 시간이 활동적인 시간이라면, 밤은 정적에 휩싸이는 시간이다. 밤의 정적은 어딘지 모르게 세상이 더욱 크게 느껴지게 만들고, 혼자 외딴 곳에 떨어진 기분이 들게 한다.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오하시는 예전에 다니던 영어회화 학원 동료들과 교토의 축제를 보러가게 된다. 그러나 곧 10년 전 실종된 한 하세가와라는 여자를 떠올리게 되고 오하시가 역 근처 회랑에서 본 동판화를 언급하면서 각자 자신이 겪었던 일화를 늘어놓는데...

 밤과 연관된 괴담 같은 일화 속에서 기척은 있지만 윤곽은 알 수 없는 쓸쓸함과 잊고 있던 무언가를 찾아내면서 나타나는 그리움이 인상적이었다. 섬뜩하면서도 어딘지 익숙한. 낯선 것이지만 알고보니 내가 알던 것이라는 점은 밤이라는 분위기를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작중 나타나는 밤은 인물들을 고립시킨다. 그저 밤이 늦어 모두가 돌아간 한적한 느낌과는 다른, 진짜 나 혼자 또는 우리 밖에 남지 않은 것 같은. 어린 시절 간혹 느꼈을 법한 밤의 어두운 세상에 대한 기묘하고 어쩐지 무서운 인상과 비슷했다. 고립이라하면 어딘가 갇혀 있다는 인상 때문에 공포스러움이 먼저 떠오르지만, 작중 상황이 여행으로 시작했기 때문인지 어딘지 모를 쓸쓸함 속에서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면서 현재의 내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고민에 빠진다. 내가 나를 속이고 있던 건 아닌지, 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던 건 아닌지, 또 내가 나를 잊고 있던 건 아닌지. 그들이 떠올린 과거는 하나 같이 밤의 세계에서 기묘한 모습으로 나타나 섬뜩함을 느끼게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알아봐 달라는 듯한 인상도 보였다. 동판화에 나타난 손을 흔드는 여자처럼.

 밤의 기묘한 이야기 속에서 간간히 언급되는 동판화의 존재 역시 눈여겨볼 점이다. 작중 배경과 분위기, 그리고 잊고 있던 무언가를 반영하는 듯한 그림은 작중 세계를 비추는 거울 같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에 동판화의 작가인 기시다 미치오의 기이한 행적까지 더해져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보이기에 이른다. 그림과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 떠오를 정도로 동판화의 신비로움은 환상 그 자체였다. 책 표지도 동판화 스타일로 되어 있어 간접적으로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섬뜩하고 기이한 분위기지만, 야행은 여느 괴담 같이 그렇게 무서운 내용은 아니다. 밤의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놀라는 한편으로, 그 곳에 남겨진 무언가에 대한 쓸쓸함으로 어딘지 모르게 슬픈 기운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비극적이라 하기는 어딘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기회가 남아 있다. 이곳을 벗어나길 바라는 희망고문이라든지,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른. 곧 나타날 아침의 모습을 기다리며 일출을 지켜볼 때의 기대감이랄까. 밤의 어둠에 머무르면 곧 절망이겠지만 그걸 누가 바라겠는가. 밤은 어쨌든 끝난다는 현실을 믿으며 밤을 거닐게 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야행 열차의 야행, 백귀야행의 야행 말고 또 다른 야행의 의미이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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